태국,축구 한국전 승리하자 대회조직위까지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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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4일 태국과의 8강전에서 진 뒤 기자회견을 갖던 허정무 감독은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대회조직위에서 일하는 태국 직원들이 승리의 감격에 도취해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가는 바람에 인터뷰장에 통역요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AP.AFP 등 외신기자들은 허감독에게 "영어로 말해달라" 고 요청했고 가뜩이나 기분이 나빴던 허감독은 "조직위에 통역사를 요구하라" 고 쏘아붙여 한동안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태국에서 주요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이와 비슷한 경우가 적잖이 발생한다.

태국의 축구 열기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이 따로 없다.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일손을 놓아 업무에 지장을 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날 선수촌이나 프레스센터에서도 자원봉사자는 물론 조직위 관계자, 경비를 맡은 군인들까지 자신이 맡은 일은 거의 팽개치고 TV 앞에 모였다.

9대11의 수적 열세를 딛고 축구 강국 한국에 승리를 거둔 이날 밤 태국은 발칵 뒤집혔다.

태국의 각 TV방송은 골든골 득점 장면을 무려 30여차례씩 방송했으나 시청자들은 전혀 질리는 기색 없이 보고 또 보며 환성을 질렀다.

방콕시내 술집에서는 승리를 자축하는 건배와 결승골을 넣은 타밧차이 옹트라쿨에 대한 찬사가 밤 늦도록 이어졌다.

15일자 방콕의 조간신문은 1면 전면을 포함, 4~6면씩을 '기적의 승리를 거둔 영웅들' 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도배했다.

신문 가판은 불티나듯 팔렸다.

방콕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한국이 주최국 태국에 엄청나게 비싼 선물을 했다" 며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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