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호 교수 '상상력의 보물창고'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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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궁핍한 시대, 상상력마저 무척 척박하다.

일상의 삶이 실제보다 더 고단한 것도 그렇거니와 요즘 소설의 위기 근원도 바로 거기서 나온다.

한마디로 '이야기의 부재' 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소설의 건강성을 빼앗아버렸다.

여기다가 사소설 또는 팬터지류 역시 보편적 이야기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제목조차 '상상력의 보물창고' (현대문학.1만3천원) .문학평론가 이남호 (42.고려대 교수) 씨가 펴낸 세계민담 모음집이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민담론 - "민담은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식 표출로서 다른 사람.사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준다. 민담은 '우주질서 속의 나' 에 대한 영적 가르침이다. 더 주목할 사실은 그 지혜를 억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의식적 차원에서 스스로 체득케 하는 점이다. "

책에 담긴 52편의 민담에서는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이 태연스레 흘러다닌다.

왕비가 절름발이 사내와 사랑에 빠지고 (2화 '재스민 왕자' ) 수도원의 하인은 밤하늘 별의 수를 알아맞힌다 (5화 '생각이 없는 사람' ) .그런가하면 미련한 곰이 영악한 여우에게 꾀로 복수를 하는데 (29화 '여우와 곰' ) 이어 생쥐가 아리따운 색시로 둔갑한다 (33화 '생쥐신부' ) .남녀의 첫 사랑법 터득방식은 에로틱하기보다 아름답다 (21화 '최초의 사랑' .별도박스 전문참조) . 이런 것들이 지금의 소설적 공백.혼돈상태 극복에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걸까. 저자의 입장은 명쾌하다.

"새로운 길찾기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서사성의 에너지와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 민담에서 문학의 원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전제를 내건다.

"눈이 맑고 마음이 순수한 자는 민담에서 보물을 얻게 되고 쓸데없이 엄숙하거나 조급한 자에겐 무용지물이다. " 책은 화가 김봉준 (44. '붓으로 그린 산그리메 물소리' 의 저자) 의 52편 그림으로 인해 더 감미롭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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