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노출 꺼려 문패 안다는 사람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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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중순께 대구 S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김모 (39.회사원.대구시남구대명동) 씨는 대문에 붙였던 문패를 며칠만에 떼내 버렸다.

이사한지 10일만에 새 주소로 원하지 않는 통신판매 안내 팸플릿이 배달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떻게 바뀐 주소를 알았는지 겁이 날 정도" 라며 "이름과 번지가 함께 적힌 문패를 걸어 놓을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없애버렸다" 고 말했다.

'문패' 가 사라지고 있다.

70~80년대만 하더라도 집을 마련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번듯하게 이름이 적힌 문패를 내거는 것이었지만 이젠 양상이 달라졌다.

정보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문패를 걸지 않거나 아예 떼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대구의 단독주택 밀집지역인 중구동인동 한 골목의 경우 주택 11채 가운데 문패가 붙어 있는 곳은 한군데에 지나지 않았다.

또 중구대봉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도 문패가 달려 있는 곳은 12집 가운데 한 곳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제일 애를 먹는 사람은 우체국 집배원들. 대구우체국의 경우 지난해 중구의 단독주택 5백가구에 아크릴로 된 문패를 달아주기까지 했지만 제대로 붙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특히 집배원이 바뀔 때는 집을 찾기가 어려워 전임자가 아예 대문에 매직펜으로 번지수를 적어 주기까지 하고 있다.

대구우체국 김형동 (金炯東) 집배계장은 "범죄나 다른 나쁜 일에 악용될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주민들이 문패를 달지 않는 바람에 일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고 말했다.

중구남산4동 새마을금고는 지난 6월 새마을금고 홍보문구가 적힌 문패 2천3백여개를 남산4동의 단독주택들에 달아주는 문패달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경북대 최광선 (崔光善.심리학) 교수는 "이는 범죄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자기방어적인 측면과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고 군중속으로 숨으려는 현대인의 폐쇄적인 속성을 함께 보여주는 좋은 사례" 라고 풀이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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