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양용은, 메이저 킹 오르다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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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이 2006년 9월 천안 우정힐스에서 열린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뒤 골프장을 배경으로 부인 박영주씨, 세 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KPGA 제공]

1997년은 양용은(37)이 프로에 데뷔한 해였다.

청운의 꿈을 안고 프로무대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양용은은 그해, 8개 대회에 출전해 상금랭킹 60위에 올랐는데 상금은 590만원에 불과했다. 볼리비아에서 약학을 공부한 아내 볼 면목이 없었다.

“월급으로 따져보니깐 50만원도 안 되더군요. 집사람에게 5년만 기다려 준다면 호강시켜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앞이 캄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5년만 기다려 달라’는 말은 아무 근거도 없는 ‘뻥’이었는데 집사람은 저를 믿어주더군요.”

99년엔 상금랭킹 9위에 올랐다. 그가 그해 벌어들인 돈은 1800만원이었다. 세금을 떼고 나면 1000만원이 겨우 넘는 돈이었다.

“프로가 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요. 건방진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구두닦이를 하면서 전국에서 9등을 한다 해도 이보다 많이 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양용은은 그래서 이듬해인 2000년부터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에서 활약하는 틈틈이 일본 투어의 문을 두드렸다. 만만치 않았다. 5년이 다 돼가도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아예 아마추어 골퍼들을 가르치는 레슨 프로로 나설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프로골퍼로서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에 연습장에서 공을 때렸다.

2002년, 그는 아내 박영주씨에게 두 번째 약속을 했다.

“5년만 더 기다려 줘요. 한 번만 더 기다려준다면 호강시켜줄 자신이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줘요.”

양용은은 그해 11월 열린 KPGA투어 SBS최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의 문이 처음 열린 것이다. 우승상금은 2700만원이었다. 우승의 물꼬를 튼 양용은은 성공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는 국내 투어를 접고 일본 투어에 전념해 2승을 거뒀다. 이듬해에도 일본 대회에서 1승을 추가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일본 투어에서 배운 것은 노련한 경기운영이었다. 이전에는 무조건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장타에 승부를 걸었지만 일본 투어를 오가며 장타와 쇼트게임, 퍼팅 등 삼박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006년, 양용은은 셋째 아들(양경민)을 얻었다. 그리고 2006년은 그가 돈방석에 올라 앉은 해이기도 했다.

양용은은 그해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 대회에서 대형 사고를 친다. 타이거 우즈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양용은은 덜컥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우승상금은 65만6000유로. 당시 환율로 8억원 가까운 큰돈을 상금으로 받았다. 생애 최고 상금이었다. 양용은은 그해 9월 한국오픈에서 우승해 2억원을 벌어들인 상태였다. 일본 투어에선 산토리 오픈에서 우승해 7억원을 챙긴 뒤였다. 2006년 한 해에만 17억원이 넘는 돈을 상금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어려움이 많았는데도 잔소리나 타박을 거의 하지 않았다. 10년을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당시 양용은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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