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물품 습득 40여명 특박 상관들 '월경'눈치 못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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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훈 중위 사인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자 국방부는 11일 당시 중대장이던 김익현 (金益賢) 대위의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그러나 金대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과 유족의 주장에는 거리가 여전해 의문은 계속된다.

◇ 사망동기 = 金대위는 밝은 표정이던 金중위가 3주간의 소대장 교육을 받은 뒤 어두운 얼굴이 됐다고 밝혔다.

전역이 임박한 장병들에게 "부럽다" 는 말까지 했다는 것. 이같은 金대위의 진술은 군 수사당국 조사에 반영돼 군 검찰은 "무력감과 자괴감이 자살동기" 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유족은 "국제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그가 자살할리 없다" 는 주장이다.

실제로 金중위는 육사졸업후 5년간의 의무복무만을 마친 뒤 미국의 로스쿨에 유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金대위는 金중위가 죽기 5일전 "무력감을 느낀다.

병사들은 많이 아는데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고 말했다며 자살쪽에 무게를 두었다.

◇ 은폐의혹 = 金대위는 근무기간중 "金중사의 북한군 접촉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金중위가 병사들의 군기 문란과 '내통' 문제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는데 직속상관인 金대위가 이를 전혀 몰랐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말이다.

유족들은 "전역병 등을 통해 金대위가 외부에 金중위 사건을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고 주장하나 金대위는 부인했다.

그러나 金대위는 金중사가 사건발생 초기부터 군 수사기관의 용의선상에 올라있었다는 뜻밖의 주장을 했다.

때문에 수사의 출발점이 '타살' 이 됐고 金중사와 시신을 발견한 병사가 집중적인 조사를 받은 뒤 판문점 근무 부적격 판정을 받고 전출됐다는 것이다.

◇ 수첩의 행방 = 金중위가 소지하고 있던 장교수첩을 미군측이 수거해 반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유족 주장. 그러나 金대위는 金중위가 수첩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사건의 진상을 가려줄 정황이나 金중위의 심경을 담고 있을 것이란 점에서 사라진 수첩의 행방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 총기관련 의혹 = 유족들은 金중위 시신 옆에서 발견된 권총이 金중사가 지난 2월 20일 초소근무를 나서면서 빌린 金모 일병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金중사의 총기반납대장에는 'D.S' (Demand State:수리요청) 라는 글자가 써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金대위는 D.S는 미군 총기반납병인 데이비드 스페이드의 약자라고 반박했다.

우연하게도 반납대장의 金중사 이름 옆자리에 잘못 서명했으며, 이를 유족들이 오해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 대북접촉 실태 = 金대위는 부소대장인 金중사가 30여차례나 북한 포섭조와 접촉했는데도 이를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金대위는 96년 12월 부임한 직후 북한물품의 회수실적에 따라 병사들에게 외박 (外泊) 을 내보내는 포상제도를 마련했다.

그는 복무기간중 40~50여명의 사병에게 특박을 주었다고 밝히면서도 유독 2소대원들이 많은 북한물건을 습득할 수 있었던 점에는 뚜렷한 대답을 못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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