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子路,합의문을 비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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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문서로써 다짐한 굳센 약속이 금방 휴지조각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 (非一非再) 하다.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실감 날 정도다.

1998년 11월 10일은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요즘 '역사적' 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써야 되는 줄 알면서도 서슴없이 이 날을 역사적인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오랜만에 여.야 영수가 모여 '성숙한 정치의 복원을 위한 합의문' 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1998년 중반기는 국민의 심사가 뒤집어진 때다.

암담한 경제사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침울한 때에 정치마저 이전투구 (泥田鬪狗) 를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 여.야 영수가 서로 손을 잡고 이해와 협력, 대화와 타협, 동반자적 관계를 지향한다고 내외에 선언했으니 이 얼마나 경사스런 일인가.

미숙한 사람들이 모여 미숙한 판을 벌이는 곳이 정치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 합의문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국민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합의서 채택 후의 상황진전은 정확히 합의서와 정반대로 나아갔다.

여.야는 서로 이해.협력한 것도 없었고, 변변한 대화도 나누지 못했고, 더군다나 타협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었다.

동반자적 관계는커녕 여전히 너 죽고 나 살기 식 싸움이 진행됐다.

총풍 (銃風) 부활시키기, 개혁입법 예산안 다 거부하기, 청문회 무산시키기, 자기당은 내분, 우당 (友黨) 끼리는 반목, 여.야는 비타협 등등 미숙정치의 예를 들면 한이 없다.

거기다 재등장한 정계개편설은 한 당의 머릿수가 늘면 다른 당의 머릿수가 주는 전형적인 제로 섬 게임 식의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독일의 체코 분할을 허용한 1938년의 뮌헨협정이 파기 (破棄) 되기까지는 그래도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성숙정치 합의문은 불과 보름도 안돼 깨져 버렸다.

그러니 이같은 초단기성 합의문이 채택된 날이 어찌 역사적인 날이 안될 수 있겠는가.

어떡하면 합의문대로 한국정치가 성숙할 수 있을까. '성숙정치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연대' 에서 공자 (孔子) 의 제자인 자로 (子路) 를 모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로는 공자보다 열 살쯤 아래인 인물. 성격이 강직하고 급해 항상 공자의 주의를 들었다.

어느땐가 공자가 정치를 하려면 명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자 세상물정을 모르는 소리라고 대꾸했다가 큰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논어 (論語) 자로편을 인용하며 말문을 연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위정자가 자신을 바르게 한다면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으며, 자신을 바르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남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자신을 바르게 하는 일입니다.

합의문의 굳은 약속, 지키세요. "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화하되 동하지 아니하고 (和而不同) , 소인은 동하되 화하지 아니한다 (同而不和) 고 했습니다.

소인의 경지에서 벗어나 군자의 경지로 들어가세요. 선생님은 항상 두소지인 (斗之人) 이 되지 말라고 훈계했습니다.

한 말 (斗) 이나 한말 두되들이 광주리 ()에 들어가는 인간들은 구태여 따질 것도 없다고 냉소하셨습니다.

여.야의 다름은 부동 (不同) 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불화 (不和) 의 원인이 되면 안됩니다. "

"위 (衛) 나라의 인구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란 선생님에게 한 제자가 인구가 많은 뒤에 정치가 할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사람을 부 (富) 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하고 묻자 가르쳐라 (敎) 하셨습니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세계 최고입니다. 어렵게 마련한 합의문도 못 지키는 분들, 사람들을 부하게 하고 가르칠 능력이 있나요?"

김성호(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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