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취임 100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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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8일 취임 1백일을 맞았다.

李총재에겐 말 그대로 고난과 시련의 나날이었다.

취임 첫날부터 터져나온 국세청 불법모금사건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사정 (司正) 바람에 휘둘려야 했다.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덮친 '십자포화' 속에, 한나라당은 지난달 30일 부총재단을 비롯한 지도부를 구성하는 등 체제정비를 마쳤다.

그런대로 여권의 전방위 공세를 헤쳐나왔다는 자평이다.

'준비안된 야당' 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예비내각제' 를 도입하는 등 나름의 정치적 의욕도 가다듬어 왔다.

하지만 李총재가 풀어야할 숙제는 산적해있다.

우선 당권 정립.강화가 급선무다.

허주 (虛舟.金潤煥전부총재 아호) 의 결별선언에 이어 이한동 (李漢東) 전부총재.서청원 (徐淸源) 의원 등이 중심이 된 반 (反) 이회창 연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회창체제로 16대 총선을 치르는 것은 어렵다" "李총재는 대권 (大權) 주자는 아니다" 는 폄하여론이 공공연히 운위될 만큼 리더십에 강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비주류 연대가 행동화할 뚜렷한 명분을 얻지 못한데다 계파간 정치적 이해가 엇갈려 '찻잔속 태풍' 에 머물러 있는 상태지만 당내외 정치환경변화에 따라 비주류연대가 폭발력을 발휘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와 관련, 당내 지지기반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

지역.계파 보스간 연합이 아닌 李총재 직할체제를 뿌리내려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핵심기반인 영남권의 맹주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경우 2000년 총선과 차기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공교롭게도 李총재의 정치적 역량이 곧 시험대에 오를 참이다.

경제청문회가 그것인데,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는 TK와 PK를 그가 어떻게 아우를지에 관심이 모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도력 문제도 극복해야 할 부분. 특히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빚어진 혼선에서 지도력 한계와 전략부재가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평가도 심심치 않다.

예산심의 초반까지만 해도 표결처리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한나라당이 지난주말 제2건국위 예산 20억원 반대를 계기로 강경론으로 선회한 데 대해선 당내에서조차 비판론이 거세다.

李총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총재단회의.의원총회에 떼밀려 우왕좌왕한 것은, 이유야 어떻든 李총재에게 근본적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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