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작가 사마라구 '예수의 제2복음'번역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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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아기 예수는 특급호텔도, 장급여관도 아닌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수가 태어났단 사실 때문에 대개의 성화 (聖畵)에서 마굿간은 지극히 성스런 분위기가 감돌게 마련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문제작 '예수의 제2복음' (영어제목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Christ.문학수첩.전2권.각 7천8백원)에는 이런 성화분위기가 전연 없다.

인간적인 번뇌와 업보의 짐을 진 예수는 그야말로 '사람의 아들' 일 따름이다.

업보는 예수의 탄생 직후,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암시하는 꿈을 꾼 왕 헤롯이 세 살 미만의 아기들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데서 비롯된다.

아기 예수는 화를 면하지만, 다른 아기들이 살륙당하게 방조한 죄의식 때문에 아버지 요셉은 밤마다 악몽을 꾼다.

이 악몽과 죄의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 예수를 지배하는 것은 소명에 대한 확신보다는 회의다.

신의 섭리에 대한 예수의 회의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결말에서 절정에 이른다.

"인류여, 하느님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분을 용서하라" 고, 작가가 변용한 성경구절은 사뭇 충격적이다.사라마구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로마교황청이 유감을 표명한 것이나 91년 이 소설의 발표 당시 유럽에서 일었던 파문은 바로 이런 맥락. 6개언어에 능통, 현직 외교관이자 시인.소설가인 역자 이동진씨 역시 카톨릭신자인 탓에 번역을 주저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무게를 갖는 이유는 자칫 불경스레 보이는 선정적 묘사 때문이 아니라, 정통적인 성서해석에서 여느 지식인들이 부딪혔을 법한 고민을 소설적 장치 안에 자유자재로 풀어놓은 솜씨에 있다.

남편을 여의고, 9남매의 장남마저 집을 나가버린 후 어머니 마리아의 불안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역자는 "종교교리보다는 먼저 관대함을 배워야 한다" 는 후기를 남겼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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