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식'여론조사]'남북정상회담 추진 신중'7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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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 국민들은 1991년 12월에 채택된 남북 기본합의서의 정신과 내용에 대체로 동감했다.

노태우정부 당시 남북간에 채택한 합의문서가 지금도 그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김영삼정부 시기에 남북한 당국간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아쉬움을 국민 대다수가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남북화해.상호불가침.교류협력을 규정하고 있는 합의서의 적극 실천을 통해 남북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데 대해 84.7%가 '공감한다' 고 긍정했다.

실행과제에 대해서는 '민간교류의 확대' 가 44.3%로 가장 높았고 '남북 특사교환과 고위급회담' (19.8%) , '합의서 이행을 위한 법제도 정비' (18.6%) , '방위비삭감과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 (13.7%)가 뒤를 이었다.

김대중정부의 정경분리 정책이 비교적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민간교류 확대를 희망하는 여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합의서 실천을 위해 조속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분위기다.

71.1%가 '시간여유를 두고 신중히 추진' 하라고 주문했고 '빠른 시일 안에 추진' 하라는 적극자세는 19.6%에 그쳤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빠른 시일 안에 추진' 하라는 의견이 60세이상 층에서 34.9%여서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이다.

60세 이상 층이 50대이하 (50대 14.9%, 40대 18.0%, 30대 18.4%, 20대 16.3%) 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산가족상봉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중정부에 들어와서도 남북한 당국간 관계가 답보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선 정부가 대북직접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남.북.미.중의 4자회담과 관련된 질문에서 '남북간 직접적인 평화협정 체결' 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52.1%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4자회담' 및 '4자회담+러시아' 형태를 선호하는 여론은 29.2%, 10.1%에 그쳤다.

남한의 군사력 강화만이 평화체제를 보장할 것이라는 보수강경론은 5.0%였다.

우리 국민들은 남북한 군비축소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남북합의하에 서서히 축소' (46.9%)가 중론인 가운데 '대치상황이므로 축소해서는 안된다' (27.0%) 쪽이 '과감한 군비축소로 경제회생비용으로 활용해야' (12.2%) 쪽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군비축소가 어느 단계에선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상황에서 안보를 우선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 남북관계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등장한 현대그룹의 금강산관광 및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남북화해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우세했다.

즉 남북화해에 '기여할 것' (60.2%) 쪽이 '기여하지 못할 것' (38.7%) 쪽보다 많았다.

다만 60대 이상 층에서 부정적 견해 (50.1%)가 긍정적 견해 (47.4%) 보다 약간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겪은 노년층이 북측이 관광 및 개발이익을 군사비로 전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결과는 금강산관광이 당초의 기대보다 저조한 것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밖에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관심사가 될 수 있는 휴전선일대의 남북 공동개발 및 활용에 관한 질문을 던져봤다.

환경문제에 관한 최근의 관심을 반영한 듯 '남북공동 생태보존사업' (28.1%) 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관광자원으로 개발' (23.5%) , '공동의 면회장소' (16.8%) , '합작 생산단지 조성' (16.8%) , '대형 체육 또는 공연시설' (13.4%) 등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뒤를 이었다.

'현재대로 보존' (0.1%)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극소수에 머물렀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지난 9월 3일 보수.진보를 망라해 1백98개 정당 및 사회단체가 참여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화협) 의 결성에 관한 질문도 포함시켰다.

이 단체의 출범에 대해서는 기대론이 우세한 가운데 시기상조론도 적지 않았다.

즉 '바람직하며 모든 국민이 적극 참여해야' (20.3%) 및 '통일의 새로운 통로로 긍정하는 편' (34.8%) 을 합쳐 절반이 넘었다.

반면에 '기대는 되나 아직은 시기상조' 가 33.6%였고 '남북관계 혼선이 우려되므로 자제해야' 한다는 견해가 9.2%나 나타났다.

민화협을 비롯한 민간통일단체들이 나서서 해야 할 사업 유형으로는 '이산가족 면회.상봉' 이 38.5%로 가장 높은 가운데 '민간차원의 대북교류사업' 20.2%, '남한내 통일에 대한 합의 도출' 13.1%, '대북식량지원 등 인도적 지원사업' 9.9% 등으로 나타났다.

김행 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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