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살찌우는 '작은 정보화' 노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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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로 집배원 생활 24년째를 맞는 장형현(51. 여의도우체국 근무)씨. 그동안 배달사고가 거의 없어 '컴퓨터 집배원' 으로 불렸지만 최근 진짜로 컴퓨터 집배원이 됐다.

수년간 독학으로 터득한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우편물을 효율적으로 배달할 수 있는 경로가 표시된 '구역집배 정밀지도' 를 직접 만든 것. 그는 신입 집배원들에게 이 지도를 줘 작업능률을 향상시키고 있다.

장씨의 일과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주소 변경내용.지역정보 등을 밤 늦게까지 정리한다. 또 수취인이 직접 우편물을 받아보지 못할 경우 자신의 호출기.핸드폰 번호 등을 남겨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하지만 지식사회를 이끌어가는 '현장 지식인' 의 참모습을 그에게서 보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장씨처럼 '작은 정보화' 를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경북안동 상황버섯마을 구천모(43)씨는 사이버 농산물 상거래로 '생산자 마케팅'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공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그는 특용작물인 상황버섯을 이웃 주민들과 재배해 인터넷 홈페이지 (www.sanghwang.com) 를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한다. 판매가격은 시중의 절반 수준도 안되지만 중간 유통마진을 줄여 실질 수입은 늘어났다는 게 그의 설명.

한국성폭력상담소 정진욱(28. 여)씨 역시 '컴맹' 이었으나 상담소의 한 영역에 불과했던 PC상담을 '정보사업부' 로 키워냈다.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온라인 성폭력' 에 대한 상담이 그녀의 전문분야.

PC상담은 피해 당사자의 신분이 잘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전화상담보다 훨씬 유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녀는 유니텔과 천리안에 '성폭력 뿌리째 흔들기 (go stoprape)' 를 개설해 누구나 성폭력 관련 전문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는 대전 한밭초등학교 정보교육지원단, 컴퓨터를 이용해 투수를 지도하는 LG트윈스의 정상흠 투수코치 등도 분야는 다르지만 정보화를 실천하는 케이스. 한편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이달 말까지 '현장 지식인' 을 추천(전화 : 02 - 570 - 4054~5) 받아 우수사례를 선정할 예정이다.

임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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