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그룹 워크아웃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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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정부가 주력업체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 으로 5대 그룹 구조조정을 매듭짓겠다는 의도를 분명히했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4일 5대 그룹 워크아웃의 주목적이 재무구조가 우량한 '깨끗한 회사' 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깨끗한 은행' 을 만드는 데 있다고 밝혔다.

기업이 부실해지면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도 덩달아 부실해지고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따라서 외환위기 원인인 금융권 부실을 청소하자면 우선 기업부터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위가 지난 3일 은행들에 5대 그룹 주력업체로부터 워크아웃 신청을 받으라고 주문한 것은 그런 이유다. 금감위는 은행들에 국제 경쟁력이 있고 사업전망이 좋지만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워크아웃 업체를 선정토록 했다.

그런 기업에 은행들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해주면 부채비율도 뚝 떨어지고 재무구조도 좋은 '클린 컴퍼니' 가 된다. 그러면 외국 돈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게 되고 그 돈으로 기업이 은행 빚을 갚으면 '은행도 좋고 기업도 좋은 격' 이 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5대 그룹은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려온 간판 기업을 적극적으로 워크아웃 대상으로 신청해야 한다는 게 금감위 입장이다. 그러나 5대 그룹은 금감위의 이런 구상에 또다른 의도가 숨어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대 그룹은 워크아웃을 통해 정부가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출자전환 후 은행들이 보유지분을 무기로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하면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감위가 "출자전환은 해주되 경영권은 '당분간' 간섭하지 않는다" 며 굳이 '당분간' 이란 말로 유보적 태도를 취한 것은 장기적으로 정부가 은행을 통한 경영권 행사에 나서겠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게 재계 분석이다.

지난 3일 5대 그룹이 금감위의 '주문' 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8개 기업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신청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중에는 아예 정부가 워크아웃 배제 대상으로 선정한 현대석유화학.삼성항공.삼성중공업 등 사업구조조정 대상 기업까지 3개사나 포함돼 있다. 정부의 워크아웃 선정 기준에 맞는 기업은 불과 1~2개뿐이다.

이와 관련, 5대 그룹의 한 구조조정 담당자는 "경영권 보장이 확실치 않은데 간판 기업을 내놓을 그룹이 어디 있겠느냐" 고 반문했다. 금감위는 이에 대해 기준에 합당한 워크아웃 기업을 다시 선정토록 은행에 주문할 예정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간판 기업 워크아웃을 놓고 정부.재계의 줄다리기 결과에 따라 기업.금융구조조정의 성패가 판가름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재훈.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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