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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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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부패하지 않아 유통기한 표시가 없는 식품. 역사적으로 흑인 노예와 아시아계 이민자의 쓰디쓴 노동으로 짜낸 단맛 결정체. 백미·밀가루·소금·화학조미료와 함께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오백(五白) 식품으로 불리는 설탕이다.

‘설탕(雪糖)’은 눈처럼 하얀 빛깔에서, 영어 ‘슈거(sugar)’는 산스크리트어 ‘사카라(sakkara)’에서 나왔다. 고대에 인도산 설탕이 유럽과 중국에 전래되긴 했으나 일반 백성에겐 상상의 꿀이었다. 17세기 초까지 설탕과 차는 약국에서 취급될 만큼 귀중한 약재였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행위, 그건 술에 금가루를 넣어서 마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류계급인 척하는, 이른바 스노비즘의 심벌로도 쓰였다. 설탕 값이 크게 떨어진 것은 17세기 중반 이후다. 브라질과 카리브해 섬에서 노예들의 손으로 사탕수수가 대량 재배됐기 때문이다. 18세기 들어서는 유럽의 하류 계층까지 설탕을 넣은 홍차를 즐길 정도가 됐다.

18세기 말 식민지가 없던 독일에서는 가축에게 먹이던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대륙봉쇄령을 내린 나폴레옹은 영국의 설탕 교역 독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탕무 생산을 장려했다(가와기타 미노루, 『설탕의 세계사』). 캐나다 국기에 그 잎이 등장하는 사탕단풍나무에서도 설탕이 추출된다.

설탕은 정치적 상품이다. 각국 사정에 따라 보조금·관세·최저가격제·수입허가제가 뒤범벅돼 있다. 유럽에서는 자국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사탕무의 과잉생산이 이뤄지곤 했다. 잉여 원당과 설탕은 국제시장에서 덤핑 처리된다. 이로 인해 국제 시세가 원산지보다 낮은 기현상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그 덕을 봤다.

오늘부터 설탕 값이 오른다. 치솟은 원당 값에 비할 바는 아니다. 국제 원당 가격은 28년래 최고다.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설탕을 생산하는 인도에서 사탕수수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격을 밀어 올렸다. 일부에선 중국의 소비가 급증하는 반면 브라질 등의 생산은 늘지 않아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제설탕협회(ISO)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설탕 소비량은 2005년 기준으로 26㎏이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 75.8㎏과 비교해 보면 적지 않은 양이란 게 실감난다. 이참에 설탕에 길들여진 입맛을 조금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