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 대학교육에 관한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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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며칠 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개최한 ‘대학교육에 바란다’ 포럼에서, 학생들은 “주입·암기식 대학 강의, 고교 수업과 뭐가 다른가” “우리는 비싼 등록금을 내는데 질 높은 강의는 얼마나 되나” 등 쓴소리를 쏟아냈다고 한다(본지 8월 14일자 29면).

이처럼 대학교육의 질이 답보상태에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 수준은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세계 수준에 급속히 다가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도 대학별 SCI 과학논문 발표 수를 보면 서울대가 세계 24위를 차지해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미국의 MIT를 앞섰다. 또한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의 대학평가에서도 2004년까지는 100위 안에 든 한국 대학이 없었지만, 2008년에는 서울대(50위)와 KAIST(95위) 2개 대학이 100위 안에 들었고 다른 한국 대학들의 순위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같이 한국에서 대학의 교육과 연구가 분리돼 연구 수준은 향상되고 있지만 교육 수준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물론 궁극적인 책임은 대학과 직접 학생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가 져야겠지만, 여러 대내외 여건들도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우선 언론의 이중적인 태도를 들 수 있다. 언론들은 대학 졸업생의 질 문제를 거론하며 교육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펴면서도, 막상 자신들이 주관하는 대학평가에서는 계량적 비교가 용이한 연구업적 위주로 순위를 매기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외국 대학평가기관과 합동으로 아시아권 대학들을 평가한 한국의 유력 중앙일간지는 평가지표로서 연구수준 60%, 교육수준 20%, 국제화 및 기타 20%의 비율을 사용한 바 있다. 연구가 교육보다 3배나 중요시되고 있고, 그나마 교육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는 교수 대(對) 학생 비율이라는 단일 항목으로서 교육의 질을 보기에는 너무 단순했다. ‘더 타임스’의 평가지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는 대학 총장들의 교육에 대한 소신 부족이다. 대부분의 대학 총장들은 언론의 평가에 매우 민감해 그 순위를 높이는 것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언론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구업적의 향상에 학교 자원의 대부분을 투입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말로는 교육의 내실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교육의 질 향상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교수의 업적 평가기준도 연구성과 위주로 만들어지고, 좋은 논문을 내면 인센티브도 두둑하게 지급되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강의를 잘하더라도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셋째는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대학 지원도 대부분 교육의 질 향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교과부의 굵직굵직한 대학 지원사업은 BK사업, WCU사업 등 모두 연구업적 위주로 되어 있고, 교육 내실화를 위한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또한 산학협동연구를 통해 연구성과를 가져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일반적인 대학교육의 충실화를 위해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학생들도 교육의 충실화를 위해 엄격한 학사제도를 도입하려 하면 극렬히 반대하기 일쑤이니, 소신 없는 대학 집행부가 학생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면서 교육의 질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처럼 언론·정부·대학·기업·학생 모두 말로는 대학교육의 충실화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대학교육의 질 관리는 개별 교수의 양식에 맡겨진 상태다.

그러기에 한 외국 대학생이 한국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면서 한 말대로 “한국 대학에서의 강의의 질은 편차가 너무 심해서, 국제적 수준에 전혀 손색없는 좋은 강의가 있는가 하면 너무 형편없는 강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수준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는 체계적인 대학교육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과 정부,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실질적인 대학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