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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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16면

2006년은 이승엽에게 또 다른 도전의 해였다. 2004년 일본 지바 롯데로 건너간 그는 첫해 14개의 홈런에 그쳐 주위를 실망시켰지만 2005년에는 30홈런을 때려내며 부활했다. 이승엽은 2005년 30홈런의 성공과 자신감으로 2006년 새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 국민의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요미우리 특유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구단 문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최고의 구단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단호했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22>

‘요미우리 이승엽’의 첫 경기는 홈런포와 함께 시작했다. 2006년 3월 31일이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우에하라, 다카하시와 함께 ‘히어로 인터뷰’를 위해 단상에 올랐다. 그때 살짝 추켜올린 모자와 그의 잘생긴 이마 사이로 모자 안쪽 챙이 드러났다. 그 안쪽 챙에 이승엽이 직접 쓴 글귀가 보였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평소 이승엽이 좌우명으로 삼는 말이었다. 지바 롯데의 성공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는 모자를 쓸 때마다 그 말을 되새기고, 노력에 대한 ‘진정성’을 되묻고 있었다.

이승엽이 그 말을 좋아하게 된 건 1990년대 초반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이정훈(현 북일고 감독)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이정훈은 91(타율 0.348), 92(타율 0.360)년 2년 연속 프로야구 타격왕이다. 왼손타자 이정훈은 경상중-대구상고 출신이었다. 같은 시기 이승엽은 대구 경상중-경북고에서 왼손타자로서의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이승엽에게 이정훈은 우상과 같은 존재였고 그런 이정훈이 각종 인터뷰에서 꺼내 놓는 그 좌우명은 이승엽의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한 이듬해부터 좌절을 맞았다. 93년 스프링캠프 때 발뒤꿈치를 다쳤다. 후배 정민철과 러닝을 하다가 다리 뒤쪽에서 “뚝!”하는 소리가 났다. 이정훈은 깁스를 했다. 그리고 하얀 석고 위에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정훈은 ‘진정한 노력’을 ‘혼이 담긴 노력’으로 바꿨다. 그는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백인천 감독님이 혼(魂)을 강조했고, 그런 강한 정신을 닮고 싶었다”고 했다.

이정훈은 그 부상 이후 한 번도 3할을 때리지 못했고 97년 OB 베어스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는 그렇게 타격을 포기했지만 혼이 담긴 노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한화-LG의 코치를 거쳐 지난해 말 북일고 감독이 됐다. 그리고 올해 두 번(황금사자기, 청룡기)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뒤 결국 다시 일어섰다. 북일고는 지난 10일 마침내 고교 야구 정상에 올랐다. 북일고의 봉황대기 우승 깃발은 노력에 혼을 담고 살아온 이정훈이 맺은 진실의 열매였다.

이정훈의 성공을 보며 시선이 이승엽에게로 옮겨 간다. 선배 이정훈의 좌우명을 그렇게도 따랐던 이승엽은 지금 다시 어두운 터널 속에 있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1군에 합류했지만 허리를 다쳐 2군에 갔다. 올해 성적도 성적이지만 내년부터, 어쩌면 야구 인생 전체가 걸린 새로운 도전을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때 다시 한번 그의 좌우명이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가 믿는 ‘진정한 노력’은 성공을 위한 ‘한 가지 길’이 아니라 ‘유일한 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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