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안락사' 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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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KBS - TV는 한 단막극을 통해 딸에 의한 어머니의 안락사 모습을 보여주었다.

20여년 전 남편이 자살해 홀로 딸을 키운 어머니는 외과전문의인 딸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켜 따로 살기에 이른다.

유방암 말기의 진단을 받은 어머니는 딸의 강권으로 수술을 받지만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딸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아버지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이 딸을 낳은 후 죽었기 때문에 자신이 떠맡아 키웠다는 것이었다.

고통을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딸에게 죽여줄 것을 간청했고, 딸은 숱한 망설임 끝에 어머니의 숨을 끊는다.

그 장면은 끔찍하지만 20여년간 갈등 속에서 살아 온 모녀의 관계가 안락사에 의한 '사랑의 확인' 으로 승화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딸의 지극한 사랑은 어머니의 극심한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기 힘겹게 하고, 그런 어머니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것은 '마지막 효도'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다면 이 여의사는 동정을 받아야 할까, 처벌을 받아야 할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락사를 찬성하는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지만 반대여론도 만만치는 않다.

특히 종교와 의학단체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워 안락사를 '살인행위' 로 간주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섣불리 법적으로 허용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데 엊그제 미국에서는 드라마가 아닌 실제 안락사 장면이 CBS전파를 타고 방영돼 2천4백만명이 시청하는 등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연출자' 는 '죽음의 의사' 로 전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미시간주 오클랜드 카운티의 잭 케보키언 박사. 네차례나 기소됐고 의사면허 정지처분까지 받았으나 지난 10여년간 1백명이 넘는 시한부 환자들의 죽음을 도와준 사람이다.

일찍부터 검찰은 그를 '의사 가운을 걸친 연쇄살인범' 이라 명명했고, 그는 검찰과 반대파들을 '백치 (白痴) 들' 이라며 맞서 왔다.

이번 안락사 방영으로 미국에서는 또 한차례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전망인데 케보키언 박사는 "감옥에 가게 되면 굶어 죽겠다" 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니 결과는 어떨는지. 이런 문제는 차라리 하늘이 심판을 내려 인간으로 하여금 승복케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데 그걸 기대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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