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패대책 현장에서 먹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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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정부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리한 공직자 부패방지대책은 몇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정부는 10월에 적발된 중.하위직 비리가 5천여건이란 수치를 함께 내놓아 정부의 부패단속의지가 식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용두사미 (龍頭蛇尾) 로 흐르는 정치권 사정과 달리 국민생활과 밀접한 공직비리에 대해선 일단 감시체제가 계속 가동 중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관급공사의 당사자들이 반 (反) 부패협정을 맺도록 하고 현행 공직자윤리규범을 보완해 접대의 수용한계까지 정하겠다는 발상도 시기는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다.

주민이 의혹분야에 대해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감사제는 공직부패에 대한 민간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효용성도 있다.

이밖에 부처에서 내놓은 대책들도 각기 필요성을 갖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세계은행 차관을 받아 분야별 부패방지대책을 연구 중이며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나온다.

어제의 것은 부분이어서 이로써 정부의 종합대책을 논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일별하면 정부대책에는 핵심적인 부분과 "과연 그렇게 될까" 라고 의문을 갖는 국민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현재 부패방지책과 관련해 정치권.공직사회.시민단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부패방지법의 제정 여부다.

국민회의는 야당 시절 이를 국회에 냈으며 법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핵심은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라는 별도의 사정기관을 두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문제다.

사정의 중추기능을 맡고 있는 법무부와 감사원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사정의 혼란을 지적하나 내심 권한의 분산을 염려하는 부분도 크다.

부패유혹에 가장 취약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이같은 부패감시기구의 강화에 소극적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솔직한 토론을 통해 독립사정기관.특별검사제 문제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히 수용하고 그렇지 않다면 국민과 시민단체를 납득시켜야 한다.

부패의 감소는 민생현장에서 체감되는 것이 중요하다.

경찰이 1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경찰관은 퇴출시키겠다고 장담하나 현장의 국민은 속으로 웃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단속강조기간이라 다소 수그러졌을지 모르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민원부패가 다시 만연될 것이라는 게 일반인의 느낌이다.

공직자에게 청렴의지를 관철시키든지, 철저한 감시체제로 부패의 선 (線) 을 끊든지, 아니면 정권이 소신을 걸고 IMF 긴축에도 불구하고 공직자 처우를 개선하든지 정부의 근본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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