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균의 뉴욕에세이]칠면조와 제사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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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의 오늘 (11월 넷째주 목요일) 은 '미국판 추석' 인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이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부모와 친척을 찾아 대이동을 하고, 온가족이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며 연휴를 보내는 것이 우리네 추석 풍경과 흡사하다.

추수감사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칠면조 구이. 올해도 줄잡아 4천만마리가 저녁식탁에 오르게 된다.

사실 칠면조 구이는 상징적인 의미는 클지 모르나 장만하기 까다롭고 맛도 별로 없다.

보통 작은 놈이 4㎏, 큰 놈은 10㎏이나 되기 때문에 통째로 타지 않게 구워내기가 쉽지 않다.

전기오븐에 약한 불로 5~6시간이나 익혀야 한다.

칠면조를 장만할 때는 스터핑 (감자.빵조각 등 몸통 안에 넣는 재료) 과 크랜베리.그레이비 등 발라먹을 소스를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워낙 고기가 터벅터벅하기 때문이다.

덩치가 크다 보니 먹고 남은 고기 (레프트오버) 처리에도 애를 먹는다.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신문.잡지가 '레프트오버를 이용한 요리' 등의 기사를 많이 싣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620년대 초기 이민자들이 미국땅을 밟았을 때 주변에 가장 흔하고 고기 양도 많은 것이 야생 칠면조였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추수감사절의 대표적인 메뉴가 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인 가운데서도 칠면조 구이를 맛있어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명절의 별미려니 할 뿐이다.

일부 젊은 주부와 어린이들은 질색하기도 한다.

우리네 전통 제사음식에 입맛을 다시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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