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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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소동은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노출된 소동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장마당은 흡사 회오리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자국과 방불하였다.

골목장 행상들이란 끽해야 잡살뱅이들에 불과했다.

갈무리해서 숨겨두었던 가을곡식이나, 채마밭에서 뜯어온 푸성귀들을 몽땅 팔고 손털어 보았자, 용돈 삼사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면 횡재한 것으로 생각하는 노파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러나 허탈뿐이었다.

장마당으로 무심히 찾아들었던 한 마리의 송아지가 남기고 떠난 횡액의 자국은 다시 탄식과 원망의 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심지어 눈물자국을 찍어 내는 노파들까지 있었다.

실제로 개값보다 못한 하락세를 치닫고 있는 송아지의 질주소동은 그처럼 행상들과 장꾼들의 속가슴을 애끓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장마당을 떠났던 송아지는 얼마 뒤 장마당으로 되돌아왔다.

어떤 행상이 고즈넉해진 송아지를 뒤따라가서 목에다 고삐를 거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목이 매인 송아지는 황용천다리 난간에 옴나위없이 묶여 있는 신세로 되돌아왔다.

그때 짐승이 보여주는 양순하고 음전스런 모습에선 조금 전까지 갈팡질팡하였던 난동의 낌새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횡포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십분 알아챈 듯, 사뭇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개울 건너 지붕 위로 소슬하게 솟아있는 교회의 낡은 첨탑을 처연하게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나 행상들이 벼르고 있는 송아지 임자가 나타날 징조 따위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짐승 자신도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주인을 찾느라 자주 목청을 뽑아 울었 다.

그러나 짐승이 목이 쉬도록 울부짖는다 할지라도 주인 찾기는 허사일 것 같았다.

가판을 난자당한 행상들이 지금 한낱 미욱하고 양순한 짐승의 모습으로 돌아온 송아지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임자가 나타날 경우 남 먼저 발언권을 차지하고 잽싸게 변상을 받아내자면, 송아지 곁에서 맴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 묻은 손에 깨 엉키듯, 짐승 주위로 모여든 행상들은 저마다 자신의 손상액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짐승은 제 값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엔 얼토당토않은 6백만원 대의 금송아지 값으로 치솟았다.

모여든 사람들이 경매장에서처럼 앞다투어 손상당한 물건 값을 계산하여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짐승은 어느덧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자신의 금어치가 촌각을 다투어 천장을 치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태도였다.

입가에 침버캐를 흘리고 있는 짐승은 무료한 시선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때때로 고개를 길게 쳐들고 먼데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처연한 목소리로 울음을 토하곤 하였다.

시간은 흘러갔고, 평소 같았으면 파장 무렵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송아지 주위에 모여 있는 십수 명의 행상들이나 장꾼들은 흩어질 줄 몰랐다.

이기나 지나 겨뤄 보자는 심산으로 헌 상자종이를 가지고 와서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도 없지 않았다.

누군가가 여물 대신 무청을 던져 주었으나 짐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송아지는 젖을 뗀 것이 확실할 만치 숙성했으나 필경 어미가 보고 싶든지 아니면 집이 그리운 게 역력했다.

모여든 사람들의 가슴속엔 송아지에 대한 희미한 연민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임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자리를 떠버리기도 하였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몇 사람은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소란 짐승은 태어나고부터 무료와 겨뤄 실패한 적이 없는 짐승이란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드디어 해 저문 장마당에 노을이 깔리며 낱알을 쪼러 내려앉은 참새떼들이 조잘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간지럽혔다.

주변의 창문 작은 식당에 불이 켜지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멀리로부터 들려왔다.

사위가 어둠에 잠겨 고즈넉해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 본 행상도 있었지만, 송아지 임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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