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모라토리엄 선언 90일 구조조정 가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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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8월 17일 러시아가 단기국채 (GKO) 등에 대해 전격적으로 90일간의 모라토리엄 (채무지불유예) 을 선언한 뒤 그 유예기간이 지난 14일로 만료됐다.

하루 전인 13일 러시아 정부는 모라토리엄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으며 금융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작업을 가속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민간은행들의 부채는 정부가 책임질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는 앞으로 ▶시중은행의 대대적인 파산 ▶루블화의 폭락 ▶러시아 은행 해외자산의 동결 등의 사태가 이어질 것임을 뜻한다.

◇ 단기채무 재조정 = 당초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때 GKO 등에 대한 러 정부의 단기채무는 당시 환율로 약 4백억달러였고 이중 외국인 보유분은 약 1백10억달러였다.

그러나 지난 석달동안 루블화 가치가 달러당 약 6.7루블에서 약 16.5루블로 떨어져 루블화로 표시돼 있는 부채규모가 1백60억달러로 줄었다.

러 정부의 상환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 또 그동안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단기국채 상환일정 재조정작업도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

▶10%는 현금 ▶20%는 이자율 0%의 쿠퐁으로 교환하되 세금 및 주식으로 교환 ▶70%는 4~5년 기간의 이자율 30%짜리 쿠퐁 등 3단계로 상환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

◇ 선물환 거래 및 부실은행 처리문제 = 그러나 이 기간중 루블화 가치 하락과 선물환 거래에 대한 러시아 은행들의 상환부담은 급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외국 은행들은 루블화로 표시된 GKO에 대한 위험회피 수단으로 러시아 시중은행들과 GKO에 대해 선물환거래를 했다.

일정기간이 지난 후 달러를 받고 러시아 은행에 미리 정해진 환율에 따라 매도하는 형태의 선물환 거래였다.

문제는 이 기간중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 러시아 은행들의 상환금액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 중앙은행 조사에 따르면 그런 채무가 약 60억달러에 달한다.

이 채무는 이미 16일부터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90일동안 외국계 은행들은 비록 이것이 민간부채이긴 하지만 러 정부가 책임을 져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 등 러 정부측은 "지불할 의무도, 의사도 없다.

해당 은행들이 외국 채권은행들과 협상할 일" 이라며 묵살하고 있다.

빅토르 게라셴코 중앙은행 총재도 "개별 은행이 파산할 경우 그곳에 계좌를 연 러시아 민간인들도 손해를 보겠지만 러 정부는 국영은행이 아닌 상업은행에 개설한 개인계좌까지 책임질 수 없다" 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6일부터 연말까지 대부분 시중은행들의 연쇄 파산사태와 이들의 해외자산 및 계좌동결을 요청하는 외국계 은행들의 송사 (訟事)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또 선물거래분 지불을 위한 달러구매 수요의 증가로 루블화의 지속적인 하락이 예상된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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