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 부둥켜안고 스스럼없이 “나의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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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ister(나의 누이).” “My brother(나의 형제).”

2년 만에 해후한 마이클 혼다 미국 하원의원(左)이 김군자 할머니와 부둥켜안고 안부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경빈 기자]

마이클 혼다(68) 미국 하원의원과 김군자(84) 할머니는 서로를 누이·형제라고 불렀다. 12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 집’에서였다.

“다음엔 언제 또 오나. 죽기 전에 한번 더 봐야지.” “10년 뒤에나 올 거요.” “에이, 그렇게 오래는 못 살아.”

통역을 통해 실제 친형제자매 못잖게 살가운 이야기가 오갔다.

일본계인 혼다 의원은 미국 민주당 소속 5선 의원. 캘리포니아 주하원의원을 거쳐 2000년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그는 2007년 1월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미 하원 결의안 121호, 소위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하원을 통과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일본 정부의 로비가 집요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명을 하원 청문회에 세워 일제의 만행을 직접 고발하게 했다. 김군자 할머니도 그때 청문회에 섰다. 이런 까닭에 2년 만에 해후한 혼다 의원과 김 할머니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부를 묻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혼다 의원의 ‘나눔의 집’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뒤 처음 찾았다. 그 후 2년, 다시 찾은 ‘나눔의 집’에는 변화가 많았다. 집중 치료가 가능한 간병동이 들어섰고 생활관은 한창 짓는 중이다. 또 위안부 할머니 2명이 세상을 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 “이미 여러 번 해 더 사과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다 의원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일본의 새 세대들이 위안부 문제를 알게 돼 결국 일본 정부도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는 또 절친한 에니 팔레오마베가 미 하원 외교위 동아태환경소위 위원장과 함께 미국 정부가 위안부 결의안을 유엔에 상정할 수 있도록 의회 차원에서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혼다 의원과 동행한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소장은 “비밀리에 추진하던 일인데 팔레오마베가 의원이 갑자기 공개하는 바람에 일본 측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일본계 이민 3세다. 그 탓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적국인’으로 분류돼 수용소에 수감됐었다. 이런 경험이 오히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더 단호하게 만들었다.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시민들을 감금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강원대 초청으로 방한한 혼다 의원은 당초 계획보다 30분가량 일찍 ‘나눔의 집’에 도착해 2시간30분을 머물렀다. 서울에서 저녁 약속이 있음에도, 식사를 준비해놨다는 말에 기꺼이 할머니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

광주(경기도)=김한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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