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분 위기 내몰린 불교 조계종 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확실한 우세로 상대방을 눕히느냐, 서로 다른 길을 걷느냐. 94년 개혁의 길을 같이 걸었던 불교 조계종단이 제29대 총무원장선거를 둘러싸고 현총무원측과 11일 총무원을 무력으로 점거한 정화개혁회의 (상임위원장 月誕 전법주사주지) 로 양분되며 각자 세몰이에 들어갔다.

12일 치르기로했던 선거가 정화개혁회의 승려들의 저지로 무산되자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오후1시 합천 해인사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종단 중추세력인 교구본사주지들은 12일 오후 모임을 갖고 현사태에 대해 정리된 입장을 내려했으나 의견이 엇갈려 실패했다.

13일 오전10시 총무원에서 열리기로 됐던 중앙종회도 출입 저지로 장소를 옮겨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렸다.

재적의원 81명중 48명이 참석한 이날 종회에서는 정화개혁회의의 즉각 해산과 총무원을 반환할 것을 의결했다.

이런 가운데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가 14일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회의를 가질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양 진영은 정통성과 세몰이를 위해 그들을 포섭하려는 물밑 교섭을 펼치고 있다.

이번 분규의 표면상의 원인은 월주 (月珠) 총무원장의 3선출마. 다른 후보들의 3선출마 부당 주장에 월주측에서는 80년 6개월간 총무원장을 맡다 10.27법난으로 물러났으니 3선이 아니라며 후보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내면상으로는 월하 (月下) 종정과 월주총무원장 사이의 갈등. 70년대말 종단이 양분됐을 때 둘은 한 배를 탔으나 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권한 배분과 개혁때 징계승려에 대한 사면복권 문제로 서로 등을 돌렸다.

지난 11일 조계사 전국승려대회도 종정의 교시에 따라 이뤄진 것. 총무원을 점거하고 정화개혁회의를 출범시키자 12일 종정은 양산 통도사에서 올라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정화불사에 동참하기 바란다" 며 전승려.신도들에게 정화개혁회의를 지지해줄 것을 바랬다.

이에 대해 총무원장은 총무원 점거를 '무력도발' 이라며 "법에 따라 선거도 치르고 총무원도 원상회복 하겠다" 고 밝혔다.

18일 해인사에서의 선거가 단순한 선거가 될지, 또 다른 초법적 승려대회로 비화될지도 두고볼 일이다.

한편 94년 개혁의 선봉에 섰던 지선 (知詵) 스님 후보측은 총무원장의 즉각 사퇴를 주장하는 한편 정화개혁회의를 "비상수단을 통해 종권을 탈취하려는 해종행위" 라며 중립적 위치를 지키고 있어 행보가 주목된다.

내각책임제로 말하자면 대통령격인 종정과 총리격인 총무원장의 세다툼이 종단, 나아가 불심을 두개로 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