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식량대난 경보 유럽 '기아불똥'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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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러시아의 올 겨울 식량위기 때문에 유럽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식량문제로 러시아 사회가 불안상태에 빠지고 이런 상황이 러시아 정권의 위기로까지 연결된다면 유럽에 불똥이 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안보위협론 = 유럽이 걱정하는 핵심은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사회불안이 극심해지고 잘못하면 폭동과 시위로 가뜩이나 약체인 현정권이 전복될 가능성이다.

유럽의 정보기관들과 미 중앙정보국 (CIA) 은 러시아의 식량위기가 정정불안 원인의 결정적 요소라고 분석하고 있다.

위협은 이미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민족주의자이면서 군의 지지를 상당히 받고 있는 알렉산드르 레베드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는 최근 "군부대, 특히 시베리아 주둔군의 경우 식량공급이 되지 않아 아사자 (餓死者)가 속출하고 있다.

식량공급이 보장되지 않으면 군 내부에서 폭동과 반란이 발생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군내 반란이 확산돼 군 전체가 동요하고 쿠데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혼란이 국민들에게 개혁 염증을 강화시켜 국가의 방향을 공산주의로 틀어버릴지도 모른다.

유럽의 또 다른 걱정은 식량부족과 사회불안 때문에 난민화된 러시아인들이 유럽으로 밀려들 가능성이다.

코소보 난민으로 이미 홍역을 치르고 있는 유럽국가들에 또 다른 골칫거리로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의 로빈 쿡 외무장관이 9일 "제 정신이 박힌 유럽 사람이라면 러시아의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 원조 = 러시아는 지난달부터 유럽과 미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해왔다.

러시아의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서방측은 긴급원조에는 합의했다.

유럽연합 (EU) 은 11일 러시아 기아 (饑餓) 구제를 위해 4억7천6백만달러 규모의 긴급식량원조안을 발표했다.

미국도 6일 올 겨울 러시아에 3백10만t 규모의 식량을 긴급 지원하기로 '원칙적' 으로 합의한 상태다.

◇ 문제 = 식량원조 방침은 섰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실행을 서두르고 있지 않다.

식량원조가 주민들에게 과연 투명하게 배분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정부관료의 부패가 극심해 정작 필요한 곳에 제대로 식량지원이 되지 않을 게 뻔하다는 걱정인 것이다.

8천여개에 달하는 마피아도 문제다.

러시아 정부.정치권.재계 요소요소에 침투해 있는 마피아 세력이 서방이 원조한 식량을 빼돌리거나 역수출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몰두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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