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회담 대화록]앙금털고 '성숙한 정치'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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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의 총재회담은 낮 12시30분부터 시작돼 당초 예상시간을 훨씬 넘기고 오후 2시50분까지 약 2시간20분동안 진행됐다.

金대통령은 쟁점사항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공책을 넘겨가며 쟁점사항을 하나하나 거론했고, 李총재도 미리 준비해간 메모지를 봐가며 회담에 임해 양자 모두 철저히 준비하고 나왔음을 보여줬다.

다음은 대화내용.

◇ 여야 협조

▶金대통령 = (현재의 국정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안정을 이루기 위해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여야가 대치를 거듭해 국민적 불안을 불러일으킨 것은 유감입니다.

▶李총재 = 무엇보다 여야관계의 정상화가 국정의 정상적 운영과 국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여야관계가 극도의 대치상황으로 이어진 것은 마찬가지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 세풍 (稅風).총풍 (銃風)

▶李총재 =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 강압적인 수사와 도청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같은 일은 결코 있어선 안되겠습니다.

▶金대통령 = 고문과 도청, 이런 문제는 나 자신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며 용납하지도 않겠습니다.

만일 고문이나 불법 도청이 저질러졌다면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하고, 또한 불법과 지나친 감청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가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李총재 = 판문점 총격요청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니 만큼 우리당으로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압수사로 진실이 왜곡돼선 안되겠습니다.

▶金대통령 = 판문점에서 북측에 총격을 요청한 세사람은 李총재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운 주변사람이니 정치적이고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李총재가 직접 관련이 있다고는 나 자신 생각하지 않습니다.

▶李총재 = 金대통령이 정치적이고 도의적인 책임을 언급하셨는데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야당의원 영입

▶李총재 =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야당 의원 빼내가기와 여당 영입 작업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金대통령 = 나는 신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야당측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협조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야당은 협조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는 그같은 원인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부 - 여당은 인위적으로 야당 의원들을 빼내갈 생각이 없으며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정치인 사정

▶李총재 = 사정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복적으로 비춰서는 안됩니다.

국민적 화합 위에 이뤄져야 합니다.

보복이나 편파 사정으로 비치는 것은 개혁의 본질을 해칠 수 있습니다.

개혁과 화합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화합의 정신으로 과거 아닌 미래지향의 큰 정치를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金대통령 = 나 역시 정치보복의 피해를 가장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쓰라린 체험을 통해 보복사정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해왔습니다.

그 점을 李총재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고, 앞으로 보복사정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믿어도 됩니다.

◇ 경제청문회

▶李총재 = 경제청문회는 정책 개선이 목적이 되도록 생산적인 청문회가 돼야 합니다.

정쟁을 앞세우는 소모적인 방식의 청문회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정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미래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그런 청문회가 돼야 합니다.

▶金대통령 = (동의를 표시한 뒤) 무엇보다 정치안정을 위해선 여야 협력이 중요합니다.

서로 협의해 신뢰가 쌓아져야 할 것입니다.

◇ 경제회생 위한 여야 협력

▶金대통령 = 합의문 내용에도 있습니다만 국난 극복을 위해 여야가 합심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또 그것을 위해 각 당의 정책위의장을 포함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야 협의체' 를 구성했으면 합니다.

▶李총재 = 야당도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金대통령 = 경제구조조정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방침인데 이에 대해 야당이 협조해 주십시오.

▶李총재 = 야당도 협조하겠으며 피부에 와닿을 실질적인 정책이 이뤄져야 합니다.

경제가 잘되길 위해서라면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金대통령 = 결론적으로 나라를 위해 힘을 합쳐 여야가 각각 제 할 일을 하면서 협력하고, 또 자주 만나고 연락을 합시다.

▶李총재 = 오늘 회동은 金대통령이 취임한지 9개월이 되고 저는 야당 총재로 취임한지 3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이뤄졌습니다.

이 만남의 의미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안정을 이루고 국민을 안심시켜 경제와 민생안정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매우 유익한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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