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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동의 중국世說] G2로 부상하는 중국을 그저 바라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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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가을 제11회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던 베이징의 하늘은 탁한 공기로 멍들었고, 천안문 광장은 유장(悠長)한 황하문명을 자조(自嘲)라도 하는 듯 초라한 자전거 물결로 중국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은 19년의 세월이 그 베이징을 마천루 숲으로 변신시키고, 장안(長安)대로를 차량의 홍수로 만들 줄이야…
이제 잠자던 용(중국)은 깨어나는 기지개를 펴자마자 저 하늘 높이 승천하는 황룡의 웅자(雄姿)를 과시하며, 이미 패자(覇者)의 반열에 오른 독수리(미국)와 천하를 쟁패하는 G2 시대의 서곡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현 국정지표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한 ‘소강(小康)사회’ 건설이다. ‘소강’이란 예기(禮記)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말로서 하∙은∙주 3대의 우, 탕, 문, 무, 성왕, 주공 등 6명의 지도자가 통치했던 태평성대를 말한다. 중국은 지금 이렇게 안으로는 태평성대의 내치를 다지고, 밖으로는 조화세계(和諧世界)론을 내세우면서,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자기의 위상에 상응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중국은 미래경제의 3대 중심 기반인 시간, 공간, 지식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면서 초대강국을 향한 구보 행군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중국의 세기(世紀)를 압축한 경제성장 속도, 육대주를 누비며 시장을 공략하는 활동공간의 세계화, 데이터, 정보, 하이테크 기술을 섭렵한 지식의 성숙도 등을 근거로 한 분석일 게다.
물론 중국에 대해 어두운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계 미국 변호사인 고든 창(Gorden G. Chang)은 ‘중국의 몰락’이라는 책에서 “중국은 공산주의 혁명이 낡아 가고, 인민의 불만은 폭발일보 직전이며, 국영기업은 죽어가고 있다”고 중국의 몰락을 점쳤다. 그러나 최근 대부분의 세계적인 석학 및 연구 기관들은 21세기에 미국을 대신할 초대강국으로 중국을 지목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필자는 지난 봄학기에 중국 칭다오 대학에서 한중관계를 강의하던 도중 한 중국학생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은 향후 초강대국(super power)의 길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중견국(middle-range power)으로 남아 동북아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나는 “국제정치학상 강대국은 일정한 영토, 국민, 군사력 등을 고루 갖춘 국가를 지칭한다”는 일반론으로 답을 대신했으나, 질문을 던진 학생의 동기가 자못 궁금했다. ‘초강대국 지향 ‘이란 표현은 한국의 국력을 과대 평가한 순수한 착각일 수도 있을 것이나, 어쩌면 중국이 초강대국의 길을 추구하고 있는 데 대한 자신감의 표출로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비좁은 국토, GDP 세계15위, 핵무기도 ICBM도 없는 재래식 무장의 60만 병력, 분단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초강대국은 물론 강대국 수준에 진입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하기야 저서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폴 케네디는 최근 한국 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 등과 같은 강대국은 될 수 없으나 독일과 프랑스는 따라갈 수 있다”는 격려성 예상을 선물했다고는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GDP는 11위에서 15로 추락했고,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범위에서 헤매고 있고, 여야는 극한 투쟁을 지속하고, 국론은 분열되고, 거리 시위대와 공장 노조원들은 연일 폭력투쟁으로 톱뉴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북한은 핵무장을 강행하면서 경제지원을 대가로 오히려 우리 국민을 인질로 잡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그러진 몸뚱아리를 한 채 중국의 G2 부상을 공포가 잉태된 찬양의 눈빛으로 바라만 볼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오직 위대한 자만이 이를 기록한다”는 명언을 상기하고 이제 서로 반성하고, 관용하며, 재도약의 불을 지펴 승리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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