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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알면 더 재밌다] 20. 장대의 힘일까, 점프의 힘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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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막대를 딛고 누가 더 높이 뛰느냐를 가리자는 발상은 언제 어디서 처음 나왔을까. 18세기 독일에서다. 1775년 몇몇 대학에서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땐 체조의 한 종목이었다. 이어 1850년에는 육상대회의 한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 기원은 옛날 한때 라인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대 켈트족의 놀이다. 켈트족은 막대를 짚고 개천을 뛰어넘는 '장대 멀리뛰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를 변형해 '장대 높이뛰기'가 탄생한 것이다.

초기엔 장대의 재질이 물푸레나무나 히코리나무(서양 호두나무)였다. 물푸레나무는 조선시대 서당에서 회초리로 주로 쓰였던 나무다. 히코리는 골프채의 샤프트로 쓰였었다. 둘 다 옹골차고 탄성이 좋은 게 특성이다. 나무가 튼튼하다 보니 해프닝도 있었다. 선수들이 점프를 한 뒤 순간적으로 나무를 타듯 장대를 기어 올라가 바를 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타넘은 기록은 약 3m.

1889년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봉 타고 올라가기를 금지했다. 하체와 복근을 이용한 순수 점프만을 인정했다. 따라서 장대의 탄성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런 면에서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 등장한 일본산 대나무는 획기적이었다. 1912년 4m의 벽을 넘은 건 바로 그 대나무의 힘이었다.

일본산 대나무 전성시대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끝난다. 승전국인 미국의 철.알루미늄 장대가 자리를 대신했다. 철제 장대는 무게와 탄성이 일정해 일관성 있는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57년엔 장대를 땅에 박을 때 지탱해주는 버팀쇠(박스), 그리고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매트리스가 도입됐다. 그전까지는 모래바닥이었다. 그러면서 기록은 4.8m까지 올라갔다.

가볍고 탄성이 풍부한 유리섬유봉은 56년에 나왔다. 낚싯대처럼 끝 부분만 휘어지는 획기적인 소재다. 도약의 속도를 잘 전달하면서도 휘어짐이 커 몸을 더 튀어오르게 한다. 이후의 소재는 이 유리섬유의 개량형이다. 하지만 봉 소재의 발전 여지는 아직도 크다. 그래서 세르게이 붑카가 세운 6m14cm의 기록이 깨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한국 장대높이뛰기 국가대표 유덕수 감독은 말한다.

장대높이뛰기가 여성에 도입된 건 2000년 시드니대회 때다. 고난도의 기술과 안전 문제로 남자(1896년 시작)보다 104년이나 늦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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