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럴때면'으로 인기…록밴드 '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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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들은 1시간 걸려 분장을 한 뒤 신문사에 왔지만, 사진촬영 직전 또다시 분장을 시작했다.

두 멤버의 눈가에 짙은 아이섀도우를 바르는데 또 1시간이 걸렸다.

달콤한 발라드 '너 그럴때면' 으로 인기 상승중인 록밴드 '이브' 와의 인터뷰는 결국 예정시각을 훨씬 넘겨 이뤄졌다.

"당신들은 비주얼록 그룹인가" 고 질문을 던지자 네 멤버는 "일본에서 요즘 유행하는 비주얼 록이라면 아니다.

우리는 음악과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도 추구하는 새로운 밴드일뿐" 이라 대답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무스로 곧추세우고 젤로 고정시킨 뒤 스프레이로 마무리한 리드보컬 김세헌이나, 여자로 착각할 만큼 짙은 눈화장을 한 기타리스트 박웅, 베이시스트 김건의 모습은 일본 비주얼 록그룹 X재팬 (지난해 해체) 을 곧바로 연상시킨다.

비주얼록은 시각적 요소가 강조되는 '화려한 록' 이지만, 여성 뺨치는 아리따운 외모.분장은 그들의 외피일 뿐이다.

비주얼록의 핵심은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화려한 공연이고 나아가 그것을 받쳐주는 탄탄한 음악성이다.

웅장하면서 드라마틱한 멜로디, 비장하고 폭력적인 퇴폐적 이미지로 국내에도 수만 팬을 낳은 X재팬은 비주얼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브는 비주얼록의 모태인 글램 (휘황찬란한) 록을 추종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주얼록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브의 외모는 비주얼록이지만 사운드 감각은 한국적이란 평을 듣고있다.

96년 가벼운 록 '아스피린' 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룹 '걸' 출신 보컬 김세헌의 노래는 휘발성의 경쾌하면서 비음 섞인 맛때문에 록팬들보다는 10대나 가요팬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내림조 멜로디와 흐느끼는 창법이 대중적인 '너 그럴때면' 등 발라드 계열곡은 물론 '송4유' '집착의 병자' 등 록넘버들도 귀여운 코러스와 유아적인 보컬, 단조적 구성에서 한국적 감각이 뚜렷하다.

이브는 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가요스러운' 곡들을 선보이고있는 것이다.

이브에 대해서는 '일본가요 개방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서 발빠르게 비주얼록 스타일을 수입했다' 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브의 과제는 이미지 차용보다는 음악의 내용에 달려 있다.

글램록과 비주얼록의 핵심인 '언더정신' 보다는 '만들어진 상품' 내음이 음반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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