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즐거워'거목과 새싹이 통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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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01면

4일 오후 ‘아시아 사이언스 캠프(ASC)’가 열린 쓰쿠바 국제회의장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와 학생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ASC 제공]

4일 오후 6시 쓰쿠바 국제회의장 402호
리위안저(李遠哲·73·1986년 노벨 화학상) 박사가 강연을 하고 있다. 30명가량의 학생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강연 주제는 ‘과학자로서의 내 인생’.“아시아 학생들은 선생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모범생이지요. 자, 내가 고1 때 깨달은 비결을 가르쳐 줄게요. ‘선생님 말을 듣지 말자’.” 말끝에 리 박사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리 박사의 말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정답’을 의심해야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죠. 나도 모든 걸 의심하면서 스스로 생각한 덕분에 노벨상을 받았답니다. 아시아 학생들, 선생님 말을 듣지 마세요.” 그제야 학생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노벨상 수상자와 과학도의 만남'아시안 사이언스 캠프' 르포

6일 오전 11시15분 메인홀
고시바 마사토시(83·2002년 노벨 물리학상) 박사가 뉴트리노(Neu-trino·中性微子) 강의를 마치자마자 200명의 학생이 경쟁하듯 손을 든다. 핑크색 부르카를 쓴 파키스탄 소녀도 10여 차례 만에 마침내 기회를 얻었다. “저기 아까 슬라이드로 보여 주신 그래프 내용을 잘 모르겠는데…. 아니 그건 아니고, 어… 그것도….” 고시바 박사는 스무 번이 넘도록 끈기 있게 슬라이드를 돌린 끝에 소녀가 말한 그래프를 찾았다. 소녀도 노학자도 활짝 웃었다.

4일 오전 10시15분 메인홀
홀은 마치 초등학교 과학실험 교실 같았다. ‘샐러리맨 노벨상 수상자’로 유명한 다나카 고이치(50·2002년 노벨 화학상)가 실과 금속 반지로 간단하게 만든 진동실험장치, 초소형 그네 등 ‘게임 도구’들을 잔뜩 가져온 것이다. 학생들이 도구들을 직접 만져 보고 실험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갑자기 다나카가 어려운 물리 방정식에 대해 물었다. “이 방정식 이해하는 사람 있어요?” 스무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아… 굉장하군요. 전 잘 모르는데….”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이집트에서 온 노르헴 모함드(20·여·아랍과학기술대 2학년)는 “건축 전공이어서 기초과학이 낯선데도 다나카의 수업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인데…”라며 매우 즐거워했다. ASC 공동 창립자인 리 박사는 “학생들이 노벨상 수상자들과 편하게 얘기하면서 ‘아, 하늘 꼭대기에 있는 줄 알았더니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구나’ 깨닫게 하고 싶다”고 캠프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 다른 창립자인 고시바 박사는 “학생들이 ‘아, 이거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이런 거라면 나도 하고 싶다’고 느끼면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본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과 캠프 방식의 소규모 토론은 특별했다. 최신 입자물리학 이론 같은 어려운 내용을 한 시간 분량의 강연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그보다 더 특별한 것은 고3~대학생 참가자들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귀 기울여 듣고 정성껏 대답하는 노학자들의 모습이었다. 노요리 료지(71·2001년 노벨 화학상) 리켄 연구소장도 그랬다. 6일 오후 강연 뒤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질문할 사람들을 단상 앞으로 모두 부르고 일대일로 질문에 답했다. 다리가 아파 오자 “난 여러분처럼 젊지 않다”고 웃으며 손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질문과 답변은 1시간20분 동안 이어졌다.

캠프에 참석한 유혜리(20·서울대 생명과학부 2학년)씨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결과를 100%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과 끈기, 창의성 등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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