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지도]5.출판-시장규모 세계 2~3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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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일본 출판계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번역왕국.잡지왕국.만화왕국 등등. 일본문화의 저력은 책에서 나온다.

주요 일간지 1면 광고가 대부분 책으로 채워지고, 유명 정치인들도 만화잡지에 칼럼을 게재할 정도로 일본인에게 책은 '당위' 가 아닌 '생활' 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우선 시장규모로 볼 때 일본은 세계 2~3위를 다툰다.

영국의 조사전문회사인 유러모니터사에 따르면 96년 일본의 출판시장은 미국.독일에 이어 3위. 95년까진 2위 자리를 지켜왔다.

한국은 7위에 올라 있다.

한국.일본의 통계를 보더라도 인구는 약 3배 차이지만 시장규모는 5배, 공공도서관수는 7배로 벌어진다.그만큼 가지각색의 책이 출간되고 또 이를 소화하는 '출판인프라' 가 완비됐다는 뜻이다.

한국과 구분되는 일본 출판계의 특징은 문고본의 활발한 간행과 잡지 중심의 매출구조. 신간 종수로는 단행본이 많으나 판매부수는 문고.신서 (新書.문고보다 세로 길이가 약간 큰 판형) 의 비중이 높다.

예컨대 지난해 단행본은 1억5천여만부가 나간데 비해 문고.신서는 2억여부가 팔렸다.

잡지왕국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서적보다 잡지의 매출이 크다.

잡지와 서적의 매출비중은 6대4 정도. 이른바 '잡고서저' (雜高書低) 현상이다.

주로 신문사나 잡지전문사가 잡지를 내는 한국과 달리 대형출판사들이 잡지 발행을 주도하는 것도 색다르다.

그리고 만화 (단행본.문고.잡지 포함)가 총매출액의 21%, 판매부수의 37%를 차지하는 '만화강국' 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1년에 찍어대는 만화책만 23억권. 하지만 폭력.외설.저질만화만 연상하면 곤란하다.

순정.교양.가정.여성.직장문화 등 만화는 일본인들 일상의 구석구석에 침투한 당당한 '매체' 다.

최근에는 출판의 복합산업화가 주목된다.

만화.팬터지.SF.공포물 등의 인기를 살려 출판의 멀티미디어화가 한창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내용을 애니메이션.TV드라마.영화.비디오 게임.장난감.문구용품으로 연결하며 출판이 고부가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시장성이 취약한 학술서.전문서들은 문부성 등 정부의 지원과 대학.공공도서관의 활발한 도서구입으로 안정적 제작이 보장되고 있다.

일례로 일본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비는 한국의 27배에 이른다.

물론 일본 출판계도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경기침체로 신간발행이 지난해 내리막길로 돌아섰고 도서 반품률도 40%에 육박하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영상.전자매체에 밀려 독서인구도 축소돼 독서의 위기에 대한 전반적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폭력.성.공상.귀신 등의 소재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을 두고 일본인들이 현실에 대한 꿈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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