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관 도청' 근절 의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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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검찰과 경찰.안기부.군 수사기관 등의 감청 (監聽) 이 크게 늘었다는 국정감사 자료가 나온 데 이어 이들 수사기관에서 대규모의 감청부서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첨단시설을 갖춘 감청부서를 통해 불법적인 도청 (盜聽) 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본지 10월 22일자 1, 3면) . 보도에 따르면 각급 수사기관에서는 첨단 감청장비를 경쟁적으로 들여놓고 있으며 일부 기관에서는 수천 회선의 전화 회선을 별도로 확보해 놓고 감청.도청을 일삼는다고 한다.

또 안기부는 원활한 협조를 위해 아예 한국통신에 직원을 파견하는가 하면 한국통신내에 협력자를 만들어 비밀리에 관리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기관의 통신 감청이 이처럼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감청은 구색 갖추기일 뿐 국가기관에서조차 법규정을 무시한 불법 도청이 대부분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청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반사회적 범죄다.

정보정치가 횡행하던 군사독재 시절의 악습이다.

야당이나 반정부 인사, 재야의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비밀무기였다.

많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곤욕을 치렀고 도청의 폐해를 절감해야 했다.

'통신비밀 보장' 은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기본권리인데도 도청 근절이 오죽 시급했으면 93년 김영삼 (金泳三)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통신비밀보호법' 부터 서둘러 만들었겠는가.

당시 정치권에서 이 법만 제정되면 통신비밀은 완전히 보장되는 것처럼 큰소리쳤던 기억이 새롭다.

국가기관이 이처럼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의 감청제도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법 도청은 수사편의라는 명분도 가질 수 없다.

또 범죄 수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온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기본권을 짓밟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므로 감청의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 감독을 철저히 하도록 하는 한편 수사기관이나 통신회사의 위반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기관의 불법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의지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야당생활 동안 도청에 시달려 온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불법 도청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 할 수 있다.

또 새 정부 핵심인사들도 야당시절 대부분 도청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불법 도청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현정부는 인권을 중시하는 정부, 진정한 '국민의 정부' 로서 인권법 제정에 앞서 국민들이 마음놓고 전화 통화라도 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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