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식당 빚더미에 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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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원룸주택을 지은 김모(65)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세입자 10명 중 월세를 제때 내는 사람이 3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어쩌다 한두 명이 임대료가 밀리는 정도였는데 올 들어 갑자기 늘어났다"며 "집을 지을 때 은행에서 빌린 대출이자를 2개월째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 성복.상현.신봉동 일대 근린상가엔 3개월 넘게 임대료를 내지 못한 점포가 태반이다. 이들 지역은 최근 2~3년 사이 아파트가 1만가구 넘게 들어서면서 5층 이하 상가들이 우후죽순으로 지어졌다. 상현동 그집앞공인중개사사무소 이난영 사장은 "6개월 이상 임대료를 못 낸 집도 꽤 있다"고 전했다.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임대료를 연체하는 세입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소규모 자영업자와 임대업자에게 대출해준 은행들도 연체율 급등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

3일 시중은행에 따르면 숙박.음식업종은 6월 말 현재 연체율이 6.4%로 1년 전 0.5%보다 13배로 늘어났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관련 업소가 크게 늘어 공급이 남아도는 데다 경기 침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동산.임대업의 연체율은 같은 기간 0.9%에서 2.9%로, 도소매업은 8.1%에서 9.8%로, 건설업은 1.9%에서 3.5%로 각각 높아졌다. 제조업 연체율도 4%에서 5%로 올랐다.

은행 관계자들은 이 같은 양상이 경기 민감업종인 음식.숙박업에서 시작된 대출 부실이 제조업으로 확산됐던 일본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원은 "최근의 연체율 상승구조는 한 은행에 국한된 게 아니다"며 "우리나라 은행들이 미래의 위험부담을 생각하지 않고 호황 업종에 단기적인 대출을 몰아준 것이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연체율 상승의 근본 원인이 내수경기 침체와 경기 양극화이므로 서민들의 경제기반이 강화되지 않고선 경기 민감업종의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원갑.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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