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된 줄 알았던 개구리 알고보니 ‘월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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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어린 개구리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12일, 서울동물원 양서류 인공증식장에서 기르던 산개구리 등 2만5000여마리가 한꺼번에 자취를 감췄다. 이 개구리들은 서울시 습지공원에 방사될 예정이었다.

보름이 넘도록 행방이 묘연한 개구리들은 어떻게 됐을까? 서울동물원 모의원 원장은 “산으로 가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원측은 처음엔 개구리들이 폭우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13일 날이 개자 사라졌던 개구리들이 한 두 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물원측은 폭우를 피해 인공증식장 아래 진흙속에 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개구리는 빗물에 휩쓸려 내려간 것도, 흙속에 숨어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월담’한 것이다. 모 원장과 이번 ‘기이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개구리가 폭우에 휩쓸려 나간건가.

"지난달 12일 과천은 국지성 호우로 단일 시간 내 최고 강우량으로 기록될 폭우가 내렸다. 그러나 휩쓸려간 것이 아니라 기상변화에 예민한 개구리가 집단 이주한 것으로 학계 전문가들과 잠정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집단 이주’한 것인가.

"인공증식장은 높이 50cm의 아크릴판 펜스로 돼있다. 다섯 구획으로 나눠진 총 99m²(30평)의 규모다. 월동, 부화, 유생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 녀석들(새끼 개구리)을 키웠다. 당시 폭우로 개구리가 펜스를 넘었다고 판단된다. 본능에 의해서다. 평상시에는 아크릴판을 뛰어넘을 수 없는데 이날은 많은 비로 개구리가 물기있는 아크릴판에 달라붙었고 펜스를 쉽게 뛰어넘게 된 것이다. 자기들끼리 위험을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 집단 월담한 것이다. 인근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으로 올라갔다고 판단한 근거는 뭔가.

"그 많은 개구리가 폭우로 유실돼 죽었다면 사체가 있을텐데 (그런) 흔적이 없다. 지금 시기는 새끼 개구리의 활동이 왕성한 때다. 산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개구리가 산으로 갔다면 먹이사슬에 이상이 없을까.

"동물원은 산 주변의 먹이사슬 구조를 항시 모니터링한다. 개구리보다 하등동물인 곤충이 평균 수준의 개체수를 이어가려면 개구리 일부를 솎아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진 이상 징후가 없다."

-몇 마리나 인공증식장에 남았나.

"비가 그친뒤 흙이나 돌 틈 사이에 숨어있던 일부 개구리가 나왔다. 4000여마리 정도 됐다. 현재까지 서울시에 있는 4곳의 생태습지에 1000여마리씩 방사했다. 요즘도 하루에 10여마리씩은 흙속에 숨어있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피해액은.

"동물원은 서울시와 함께 도롱뇽과 산개구리, 금개구리, 남생이 등을 연구와 번식 목적으로 기르고 있다. 이번 산개구리는 4년 전 포획해 인공증식장에서 길러오고 있는 것들이었다. 개구리를 방사하겠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반성하고 있다."

-개구리가 돌아올 가능성도 있나.

"양서류에 대한 학계 논문 등을 살펴보면 개구리의 10~20%는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곧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2~3년 뒤 번식할 시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월담했던 개구리 중 일부가 2~3년 뒤에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대책은

"이번 일을 계기로 개구리 관리와 방사 시기에 대한 보완 조치가 있을 것이다. 개구리 인공증식장의 펜스 높이를 1m이상으로 높여 월담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또 내년엔 장마를 대비해 개구리 방사 시기를 조율할 것이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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