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밤 10시면 불 꺼지는 학원가 … 학파라치 효과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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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10시 학원 수업 마감시간 직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 도로가 인근 학원 100여 곳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이들을 태우려는 승용차, 학원 버스 등으로 혼잡을 빚었다. 학파라치제도 시행 한 달 동안 학원가 앞 도로는 극심한 정체 현상을 반복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3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 학원가. 10분 전부터 건물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100여 개 학원 간판 조명등과 실내등이 속속 꺼졌다.

수학 전문 C학원 박모 원장도 서둘러 학생들을 내보내려 했다. 이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질문이 있는데요.”

박 원장은 “내일 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난달 혼자 남아 노트정리를 하던 수강생 한 명 때문에 강남교육청 단속반에 걸려 벌점 5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들도 일제히 불을 껐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학원에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학원을 마친 일부 학생들이 가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인근 H오피스텔로 들어선 것이다. 고교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은 이 건물 3층에서 현관문에 달려 있는 열쇠 키 비밀번호를 직접 누르고 문을 열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곧바로 문이 닫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지난달 7일 도입한 ‘학파라치제(학원 불법교습 신고·포상제)’가 시행 한 달을 맞았다. 한 달간 학원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과 목동 지역 밤 풍경이 달라질 정도로 눈에 띄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감시의 눈은 피할 수 없다=학파라치(학원 불법 신고꾼)의 감시 효과는 컸다. 오후 10시 이후 심야 교습을 하는 학원들은 거의 사라졌다. 그동안 교육청 단속반이 출동해도 아랑곳하지 않던 학원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학파라치의 눈은 무시하지 못한 것이다.

서울 목동의 논술 전문 T학원의 김모 원장은 “한 달 만에 수강생이 20~30% 줄어 강사 인건비와 임대료 내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강사와 대형 강의실이 필요 없는 개인 교습소로 전업하기 위해 학원을 부동산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대치동 영어 전문 C학원 관계자는 “수강생이 학파라치로 돌변해 교육청에 신고한 학원도 있을 정도여서 분위기가 삭막하다”고 말했다.

이런 학파라치 효과를 반기는 학부모도 많았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박정화(42)씨는 “지나친 교육열을 가라앉히려면 이 제도는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파라치의 이면=학파라치들의 감시를 피하려는 학원들은 새벽반이나 주말반을 만들었다. 부족한 수업 시간을 확보해 수강생을 붙잡기 위해서다. K학원 김 원장은 “새벽 5시30분에 시작하는 새벽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저녁 수업을 예전보다 1시간 일찍 시작하거나 토·일요일에 보충수업 시간을 잡아 평소 못한 강의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원도 많았다. 고교 2학년 이모(18)군은 “학원 수업을 일찍 시작하는 바람에 학교 보충수업 중간에 빠져나와도 학원 수업 초반부를 못 듣고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수요가 학원 밖 개인 과외 쪽으로 이동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대치동 K영어학원 김모 원장은 “지난달부터 엄마들에게서 ‘그룹 모아놨으니 과외 해달라’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인섭 숙명여대(교육학과) 교수는 “학파라치는 일시적인 충격 요법으로 활용할 수는 있으나 이것이 사교육 잡기의 주된 방법이 되어선 안 된다”며 “돈 있는 학생들은 고액 과외로 빠져나가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김경원·하태현 인턴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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