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은행감원 태풍 마침내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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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은행원 수난시대' .이달내로 9천여명의 직원을 감원하기로 한 조흥.상업.한일.외환은행 등 9개 은행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서 은행원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얼마간의 퇴직금이라도 챙길 수 있을 때 직장을 떠날 것이냐, 그래도 버텨볼 것이냐.이런 저런 고민으로 눈치를 보다 보니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각 은행 인사부에는 신청 마감일에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는가 하면 퇴직의 부담이 덜한 여행원들의 신청이 쇄도하는 등 갖가지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 선택=K은행의 별정직 직원인 Y (42) 씨는 이번에 16년간 다닌 직장을 떠난다.

'별정직은 전부 내보내고 외부 용역을 준다' 는 것이 은행측의 결정이기 때문에 Y씨에게 퇴직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Y씨는 "책임자가 아닌 일반직원들에겐 12개월어치의 특별퇴직금을 준다니 그나마 다행" 이라면서도 "그러나 1억원 남짓 받아나가 사업을 할 수도 없고 앞으로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어떻게 부양할지 막막하다" 며 한숨을 쉬었다.

S은행의 K (32) 계장도 퇴직을 신청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될 때는 남부러울 것 없던 K씨의 집안은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를 혹독히 겪었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부도나고, 이에 어머니가 보험 모집에 나섰다 쓰러져 반신불수 상태가 된 것이다.

그동안 병원비를 대느라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K계장은 "퇴직금 받아 빚을 갚고 어머니 병원비를 충당할 생각" 이라면서 "국민학교도 안 들어간 두 아들을 떠올리면 어떻게든 남아야 겠다는 생각도 안한 건 아닌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정에 따라 희비 엇갈려=C은행 지점장 A씨는 요즘 억울함에 밤잠을 설친다.

A씨는 올해초 희망퇴직을 신청했으나 한 임원이 "실력있는 사람은 은행을 위해 더 일해야 한다" 며 간곡히 만류해 마지못해 남기로 했다.

그러나 그 임원은 이후 경영진 물갈이로 은행을 떠났고 최근 A씨에게는 은근한 퇴직압력이 들어오고 있다.

A씨는 "이번엔 퇴직금이 2억원도 안된다" 면서 "너무 억울해 버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 말했다.

반면 결혼을 앞두고 안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려던 K은행의 한 여직원 (31) 은 "마침 잘됐다" 는 반응이다.

지금까지는 일반행원에게 특별 위로금을 지급하며 명예퇴직을 시키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들 감원숫자 채우려 노력 = 외환은행은 "신청자가 모자라면 인사고과.승진누락.나이 등을 따져 권고퇴직시킨다" 고 선언한 후 대리 이상 직원에겐 인사고과 성적을 개인별로 통보했다.

인사고과가 나쁘면 어차피 내보낼 테니 미리미리 신청하라는 뜻이다.

한일은행도 일반직원 퇴직유도를 위해 부장.본부장들이 모여 46년 이전 출생자와 69년 이전 입행자들이 일괄 명퇴를 신청하는 모범을 보였다.

또 '명퇴자에겐 최고 3천만원까지 우대금리로 가계자금을 대출해 주겠다' 는 유인책도 내거는 등 퇴직유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경민.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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