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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미래를 향한 옛것의 보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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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탈리아는 옛 것을 잘 보존하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투철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유럽연합 (EU) 15개국 중소기업중 4분의 1이 이탈리아에 있다고 한다.

잦은 정권교체로 이름난 이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 가는 것은 바로 이들 중소기업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며칠 전 필자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 비전그룹회의 주재차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방문한 바 있다.

이번 방문기간중에도 필자는 오랜 전통과 자랑스런 문화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소중히 여기고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최대한 전수해 주려고 노력하는 이탈리아국민들의 강한 의지에 대해 새삼 존경과 부러움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로마 시가를 거닐어 보면 외형상 허름한 수백년 된 건축물과 다소 비좁고 혼잡한 도로망을 보게 된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물려준 값진 문화적 유산과 역사의 현장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좁은 거리에 작은 승용차와 모터 스쿠터를 이용하는 지혜와 이해심을 발휘하는 것이리라. 또한 오래된 건축물도 좁은 내부 공간이나마 현대생활에 큰 불편 없게 멋있게 개조해 쓰는 지혜를 최대한 발휘한다.

로마의 지하철은 아직도 운행구간이 상당히 짧다고 한다.

지하철 건설에 따른 문화유적 훼손을 최소화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시의 고가도로 건설편의를 위해 원형훼손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에게는 둘도 없는 독립문 이전을 단행한 우리의 안목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이탈리아는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약 1.5배, 그리고 인구가 5천7백만명 정도 되는 우리나라와 흡사한 반도의 나라라는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난 한햇동안 이 나라를 찾은 외국관광객수가 3천1백만명에 이르고, 이들이 남기고 간 관광수입이 미화 3백억달러를 웃돌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기원전부터 시작된 로마제국과 르네상스기간을 거치며 이 나라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찬란한 문화와 그 유산을 보러 온 사람들일 것이다.

또한 잘 보존된 역사의 현장에서 피부에 와닿는 역사를 체험해 보려고 온 사람들일 것이다.

유럽 15개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아시아 15개국 대표들로 구성된 ASEM비전그룹 위원들은 이번 회의기간중 일찍이 16세기에 라파엘로의 건축계획에 따라 그의 제자들이 완성했다는 정말 아름다운 '빌라 마다마' 별장과 나폴레옹이 워털루전쟁에서 패한 뒤 자기 노모 (老母) 를 피신시켜 모셨다는 아파트에서 연회와 만찬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곳에서 '현실 속에 살아 있는 역사' 를 느껴 보는 감회는 필자뿐 아니라, 이러한 문화유산과 역사의 현장이 소실되거나 잘 보존되지 못한 나라에서 온 위원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우리 세대는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들을 적절히 보존.유지하고 있는가.

이유는 어쨌든 간에 우리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역대대통령이 집무해 온 곳으로서 국운이 좌우되는 주요정책결정들이 이뤄져 온 옛 청와대 본관건물을 우리 손으로 산산조각내 버렸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 역대대통령 박물관으로 보존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

또한 우리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일제 식민통치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잊지 못할 6.25전쟁중 수도재탈환을 상징하는 감격적인 국군장병의 태극기 게양현장이었던 옛 중앙청청사도 철거해 버렸다.

끝없는 전쟁으로 정복과 피정복의 연속이었던 유럽제국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와 같은 안목에서 본다면 유럽 주요도시에 남아 있을 건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우선 우리 세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들을 최대한 잘 보존.유지해 원형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하자. 또한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일궈 내야 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소중히 여기고 장인정신을 살려 세계 제일의 중소기업도 키워 나가자.

또한 좀 더 긴 안목에서 국토계획과 도시계획도 마련하자. 오늘의 프랑스 파리 시가 모습은 1백50여년전 나폴레옹 3세때 그 기초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3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뜯어 고칠 도시계획과 헐어 버릴 건물은 이제는 생각하지도 말자.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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