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을 소년원에 보낸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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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모들은 변호사까지 동원해 빼내 줄려 하는데 아빠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달라질 수 있다고? 난 들어가서 천장만 쳐다보다 올 거야!”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동생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소년원에 갔다.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다.

‘비정한 아버지’

“원망 많이 했죠. 아빠한테 모진 소리도 많이 했고...” 아빠 이야기를 시작하자 수진(가명17)이는 눈물부터 흘렸다. “처음엔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자식을 소년원에 보낼 수가 있을까?’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의외였다. 소년원에서 만나 수진, 수정(가명16)이에게 아빠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느낀 것이 이 세상에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아빠밖에 없다는 걸 알았어요.” 동생 수정이 역시 이젠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부모가 돼서 판사님께 탄원서까지 써가며 제 손으로 아이들을 소년원에 보냈습니다. 엄동설한 북풍한설이 누구보다도 더 시리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 김종호 씨는 중국에서 두 아이와 함께 홈스테이 사업을 했다. 엄마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었기에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욕심이 컸고, 그 때문에 선택한 길이었다. “유학을 보내려고 했어요. 아이들만 보내긴 두려워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 홈스테이를 했죠. 큰 아이에게 용돈을 주면 아이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더군요. 그게 기특해 돈을 더 주게 됐죠. 만12살이 넘으면 비행기를 혼자 탈 수 있어요. 그동안 모은 돈이 비행기 티켓비용이었죠.” 그렇게 큰 아이 수진(가명)이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얼마 후 작은 아이 수정이도 같은 방법으로 사라져 버렸다. “40명의 한국 유학생들을 돌보고 있었어요. 남의 자식 돌보다 제 자식에게 소홀했죠.” 중국에서 자리 잡은 사업도 아깝지 않았다. 김종호 씨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문서 부정사용입니다.”
김종호 씨는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을 찾아 헤맸다. 결국 아이를 찾은 곳은 경찰서. 작은 아이 수정이가 ‘공문서 부정사용’로 잡혀있다는 연락이 왔다. “판사님께 탄원을 올렸습니다. 소년원에 보내달라고요. 전 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또 가출을 하면 영원히 딸을 잃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아이를 소년원에 보냈다. 사라진 큰 딸을 찾으며, 소년원에 보낸 작은 딸을 가슴에 삼키며 아버지의 심장은 녹아버렸다. “2~3일마다 면회를 갔어요. 울기만 하더군요. 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염치없는 아비가 그 아이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어요. 그렇게 바라만 보다 왔습니다.”

“유흥업소 사장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큰 아이를 찾은 것도 경찰이었다. 유흥업소에서 임금을 체불당하고 갈 곳이 없었던 수진이. 전화를 받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처음엔 미칠 듯이 화가 났죠. 미성년자한테 그런 짓을... 하지만 경찰서에서 딸아이를 만나고 마음이 바뀌더군요. 더 나쁜 곳에 팔지 않아서 고맙고, 아이를 해치지 않아서 고맙더군요.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우리 아빠’
처음 면회를 하던 날. 자매는 면회시간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의 얼굴조차 외면했다.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많았어요. 그리움이 쌓이니까 서럽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는 아빠의 뒷모습이 너무 무거워보였어요. 면회 오실 때마다 쳐진 아빠의 어깨가 불쌍했어요.” 공부를 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아빠한테 기쁨을 선물하고 싶었다. “미용사 자격증이랑 한자자격증 그리고 검정고시도 합격했어요.” 동생 수정(가명)이가 쑥스럽게 자랑을 했다.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그때 알았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자매는 이곳에서 취득한 자격증들로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저도 이젠 꿈이 있어요. 아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요. 가슴이 찢어지는 선택을 하신만큼 기쁨을 드릴 거예요” “무엇보다 저를 보면 이제 웃어주고 손을 잡고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이제 저는 행복합니다.” 아버지는 꿈을 가진 자식이 자랑스럽고,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딸들에게 감사한다.

“아이를 인정해 주세요.”
김종호 씨 가정의 길었던 가시밭길은 이제 그 끝이 보이고 있다. 사라진 가정에 다시 한 번 연꽃이 피려는 것이다. “아이들을 인정하세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나쁜 짓이 아니라면 그들의 행동에 격려를 보내주세요. 전 과거 아이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설계하고 세상이 정해준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두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제가 배운 것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선 부모와 자식은 8천겁(생)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8천 번의 생을 통해 만난 이들의 인연은 참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때론 슬프고 아프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몸소 느껴서 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시리지만 따뜻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1년, 서로를 보듬고 함께 할 시간은 이들에게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뉴스방송팀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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