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면학 해치는 '1학기 수시' 재고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저는 올해 나이 48세의 늦깎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올해 고3으로 복학했습니다. 고3으로 복학한 지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갔습니다.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해는 벌써 저물어가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누군가가 도로까지 파헤쳐 놓았으니, 더욱 고달픈 여정입니다. 바로 1학기 수시모집 때문입니다.

고3 교실은 봄이 절정에 이르는 5월 초가 되면 들썩거리기 시작합니다. 한쪽은 수능시험 준비에 내신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높이려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그 옆에서는 어느 대학에 원서를 넣어야 할까 고민합니다. 공부에 집중될 리 없습니다.

1학기 수시모집 일정을 보면, 5월에 원서를 써서 이르면 6월부터, 혹은 7월에 면접.논술고사를 치르고 7, 8월이면 대학별로 합격자를 발표합니다. 그 기간 중 교실은 당장 이사갈 집처럼 어수선합니다. 교과 지도에 충실해야 할 담임선생님들도 상담하고 원서 준비를 하느라 수업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1학기 수시모집에 전문대까지 대대적으로 가세해 수업 분위기는 더 엉망이었습니다.

도대체 1학기 수시가 얼마나 비중이 크기에 이렇게 전국의 고3 교실이 떠들썩해야 합니까? 기가 막히게도 모집 상한은 대학 정원의 10%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과에 많아야 10명, 어느 과는 1, 2명이고 대부분이 5명 안팎입니다. 뽑는 인원은 적지만 안전한 길을 택하려는 기대심리로 경쟁률이 최고로 높은 곳은 143 대 1이었고, 낮아도 보통 수십 대 1입니다. 학교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수업 분위기가 엉망으로 되어버리는 현재의 1학기 수시모집 제도에 부정적입니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교육부는 항상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고3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입시준비의 장으로 전락한 것을 전제로 교육제도를 입안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학 당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지원자가 하도 많아 원서 장사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받는다고 불만입니다. 대학도 입학 전형에 투여하는 인적.물적 자원 때문에 고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대학은 그 돈으로 건물을 지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학생과 교사, 대학 모두를 볼모로 잡는 제도는 당장 고쳐야 합니다. 올해 발표된 '2006년 대입 제도'에 이렇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1학기 수시 모집에 대한 개선안이 포함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내용을 보면 1학기 수시 모집을 7월에 시행하고 장차로 그 시기와 횟수를 각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9월부터 하는 2학기 수시와 겹치게 됩니다. 그것은 1학기 수시는 실제로는 폐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폐지가 아니라 개선이랍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개선안입니다. 사실 1학기 수시의 폐지 문제는 실시 2년째부터 심각하게 나왔던 얘기입니다. 수업 파행에 따른 일선 교사들의 반대가 상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시행하는 것은 입시 제도 변경에 따른 파장이 우려되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어느 곳이든 이른 시간 내에 고3 교실에 가서 그 파행의 '현장'을 한 번 보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태웅 서울 삼육고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