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값이 튀는 모양새…패션가 '제3세력' 급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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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일자리를 잃거나 일감이 줄어 진로가 막연해진 패션디자이너들이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 활로를 찾고 있다.

이들은 특히 유명 브랜드와 시장 옷을 양대 축으로 하는 의류시장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지며 패션가에 '제3의 언더그라운드'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60~70년대 개업세대들이 비싼 맞춤옷 전문 양장점에 치중했다면 이들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비교적 싼 값의 캐릭터 브랜드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서울 명동과 이대.홍대앞 등 신세대 패션1번가로 꼽히는 지역들. 최근엔 동대문시장에 문을 연 패션전문점 밀리오레 3층이 기존 도매점포와 달리 '옷 갈아 입는 공간' 까지 갖춘 부티크형으로 단장하면서 이곳에 대거 진출했다.

개업 브랜드는 현재 50~60여개로 추산되며 점포를 4~5개까지 늘리며 다점포화하는 브랜드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나무' '쏘세지' '스푼' '현기증' '동명천왕' '수퍼걸' 등 별난 브랜드가 많고 가격대는 대부분 2만~5만원대의 중저가 수준. 재미 있고 가벼우면서도 남다른 옷을 찾는 젊은 층의 취향에 맞추려다 보니 이름도 다소 '엉뚱한' 것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는 게 디자이너들의 설명이다.

이들 디자이너 점포가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5월말 서울 명동 패션전문점 'V익스체인지' 가 4층을 이들을 위한 공간인 '짱' 으로 꾸미면서부터. V익스체인지 한재석 영업부서장은 "유명브랜드 아웃렛 의류가 쏟아지는 마당에 고가 브랜드나 저급의 시장옷으로는 대항할 수가 없어 디자인과 가격 양쪽을 만족시키기 위해 독립한 디자이너들의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고 말했다.

이들 브랜드의 특징은 패션감각이 뛰어나고 디자이너 브랜드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고객의 반응이 즉각 반영되는 시장의 신속성까지 갖췄다는 것. 이에 따라 최근 젊은 층에서는 이런 옷들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박선영 (21.S대3년) 씨는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흔치 않은 옷들이 많아 자주 찾는다" 고 말했다.

이들 언더그라운드 브랜드의 고민은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다 보니 원가 부담이 크다는 점.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 출신 등 3명이 함께 밀리오레에 '페이지 걸' 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욱씨는 "소량생산방식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어 일본.홍콩.대만 등지로 수출길을 알아보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들 브랜드가 젊은 층의 얄팍한 취향에만 몰입해 디자인에 깊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순진 (27.스푼 대표) 씨는 "최근에는 언더그라운드 브랜드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업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며 "앞으로 언더그라운드 패션만이 갖는 볼거리와 특징을 찾아야 한다" 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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