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바캉스] 8. 이집트 여성의 물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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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옷 입은 채 수영을 즐기는 이슬람 여성들.

이집트 카이로 동쪽 홍해의 해변 아인 수크나. 한 특급호텔의 수영장에서 최근 논쟁이 벌어졌다. "옷을 입고 풀에 들어가지 말아주세요. 아니면 바다로 가주세요." 호텔 직원이 한 무리의 여성들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다." 이 한마디에 직원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여성들은 다시 '옷을 입은 채' 호텔의 풀 속으로 들어갔다.

외국인도 투숙하는 특급호텔이라 관리자는 고민이 크다. 사막의 먼지 속을 통과해온 여성들이 옷도 갈아입지 않고 물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물이 더럽다'며 외국인들이 간혹 호텔 측에 항의한다. 한 직원은 수영장 청소 때마다 바닥에 가라앉은 단추.머리핀 등을 발견한다고 한다.

그러나 호텔 측이 여성에게 '옷을 벗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불필요한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는 게 이슬람 법이기 때문이다. 논쟁해봤자 손님 측이 이길 수밖에 없다.

이슬람 여성의 상당수는 이 때문에 수영을 잘 하지 않는다. 특히 눈만 내놓는 니카브 두건을 착용한 여성들은 물에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보다 약간 개방적인 여성은 50도의 더위에 타협할 수밖에 없다. 얼굴을 내놓은 히잡(머리두건)을 쓴 여성들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수영을 즐긴다.

이들을 위한 특별 수영복도 나왔다. 머리두건을 포함해 긴 옷으로 된 수영복이다. 물이 잘 빠지는 특수천으로 만들었다. 이 수영복을 판매하는 업체는 '10분이면 마른다'는 선전문구로 대박을 터뜨렸다.

일부 업체는 잠수복처럼 몸에 딱 붙는 칠부 수영복도 판매한다. 호텔이나 수영장 측의 의견을 수렴해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입는 것은 주로 어린이다. 성인 여성은 이마저도 거부한다. 물론 비키니를 입는 이집트 여성이 없지는 않다. 일부 상류층 젊은 여성과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기독교 여성들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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