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메라 앵글은 끈끈한 남성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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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여자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찬찬히 훑어 올라가는 카메라 앵글. 그리고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영화 속의 무수한 여성들. 이런 것들은 카메라 자체의 시각이 남성적임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폭넓게 논의된다.

이는 숭실대 여성문화연구소 주최 '섹슈얼리티와 대중문화에 관한 아시아 - 태평양 국제 심포지엄' (10일 오전9시 예술의 전당 서예관 4층)에서 발표될 내용. 이날 심포지엄에는 미국연극학회 (ATHE) 질 돌란회장.조지 워싱턴대 스테이시 울프 교수 등 해외 인사와 영화평론가 유지나 (동국대 교수).행위예술가 이나미씨 등 국내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참석해 페미니즘 이론을 바탕으로 현 대중문화를 해부한다.

숭실대 여성문화연구소 심정순 (沈貞淳, 연극평론가) 소장은 "최근 영화나 연극계에서는 포르노가 마치 '표현의 자유' 를 구현한 것처럼 말해진다" 며 "여성의 눈을 통해 대중문화를 보는 방법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심포지엄을 준비했다" 고 말했다.

영화.연극.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적인 시각이 담겨 있는데 이는 가장 여성주의적인 작품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 울프 교수는 "미국영화에서 대부분 카메라 시각은 남성적이며, 카메라는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는 흥미가 없고 단지 그녀의 아름다운 몸에만 흥미가 있다" 고 주장한다.

또 울프 교수는 카메라 작업에 담겨있는 남성시각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여주인공의 몸매를 드러내 보여주고 나서 남주인공의 얼굴을 비추는 '은밀한 유혹' 의 장면을 꼽는다.

영화평론가 유지나씨는 "영화는 여성의 얼굴을 신비하게 그려내는 데서 출발해 현재 몸을 '섹스' 대상으로 우상화하는 데까지 왔다" 며 "신세대 여형사를 그린 '투캅스3' 에서조차 여형사는 가슴선이 깊이 패인 티셔츠와 달라붙는 바지로 재현된다" 고 지적한다.

'남성의 눈' 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공연형태가 뮤지컬 양식이라는 게 울프 교수의 견해. 남녀주인공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성에 관계없이 장면이 역동적인 데다가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는 관객들이 극 속에 함몰되지 않게 한다는 것.

돌란회장은 기존의 관점을 뒤틀어버리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공연 이론을 바탕으로 영화나 연극을 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의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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