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진출 한국 기업 78% “전문인력 못 구해 손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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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20면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상하이 푸둥 지역의 화려한 야경. [중앙포토]

한·중 수교 17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 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중국 내수시장의 성공적인 공략일 것이다. 이를 위한 각종 행사와 세미나가 활발하지만 정작 중국 전문인력의 중요성은 그다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내수시장 진출은 중국인과의 만남이자, 중국 기업과의 거래·상담·협상을 의미한다. 중국인에 의한 현지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들의 정확한 의중과 협상술을 모른다면 결코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특화된 전문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몇 년 안에 도래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까지 감안한다면 우리 기업의 생존·발전 전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왜 비즈니스 중국어인가

필자가 중국에 투자한 200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8.2%가 최근 3년간 중국 전문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해 금전적 손실이나 사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전문인력 구인난으로 인한 실패경험 조사’ 중에서) 중국에선 최근 내·외자 기업의 기업소득세 통합, 신(新)노동계약법에 따른 인건비 상승, 위안화 절상, 노동집약 산업에 대한 우대정책 축소·폐지 등으로 기업 환경이 격변했다. 그래서 산둥·광둥성 등지에 진출한 한국·홍콩·일본 기업들의 무단 철수(언론에선 야반도주라고 한다)가 급증했다.

특히 한국 기업의 무단 철수 문제가 불거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해 칭다오에 있는 200여 개 한국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가공무역 중서부 이전정책 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다. 왜 한국 기업들이 유독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경변화를 미리 예견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그것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없거나 부족했다는 것이다.

실무 언어 능력은 중국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창과 방패와 같다. 기업 측에선 중국어 인력 공급은 많으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요한 실전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고급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지난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국에 투자한 200개 기업에서 중국 기업과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인한 사업 피해 금액은 40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 참조>

필자는 지금까지 3000번 넘게 중국 기업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중 실패 사례는 대부분 초기 협상 단계에서 양국 간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인해 발생했다. 예컨대 한국 기업의 성공모델은 A이고, 중국 기업은 B라고 할 때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모델로 비즈니스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측의 동상이몽은 계약서 체결을 위한 실무협상에서 가시화된다. 즉 A도 B도 아닌 C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비즈니스가 흘러간다. 결국 양측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중국 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뿐 아니라 비즈니스 중국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중국에서 ‘외상(外商) 투자기업’과 ‘외국 기업’은 크게 다른데, 한국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로 혼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전자는 영업행위를 할 수 있는 법인 형태고, 후자는 중국 안에서 원천소득이 있는 외국 기업과 경제조직을 포괄하는 말이다. 우리에겐 ‘주재원 사무소’ ‘외국계 은행 지점’ 등의 뜻이다.

또한 분공사(分公司)와 자공사(子公司)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해 중국 사업이 몇 개월씩 지연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분공사는 본사 산하기구로 경영활동에 종사하지만 기업법인 자격이 없고 법적 민사책임을 지지 않는다. 반면 자공사는 법적으로 민사책임을 지는 독립적인 법인 형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오해가 계약서 체결 단계에서 나타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광둥성 둥관에서 만난 모 기업 사장은 “대학 중문과를 졸업해서 중국어로 된 계약서 하나 작성하지 못한다면 무슨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필자한테 반문한 적이 있다. 필자는 한국산업인력공단 프로그램인 ‘중국 취업 비즈니스 전문가 연수과정’에서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곤 한다. 강의 후 한어수평고시(HSK) 10급 이상 연수 대상자 가운데 사전 지원을 받아 관련 자료를 주고 중국 기업과의 협상 통역을 맡기곤 한다. 그런데 모의 협상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지나면 실무 언어의 한계 때문에 통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중국어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기업에 맞는 전문인력의 조건도 바뀌어야 한다. 생활 위주의 단순한 암기식 어법교육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바로 뛸 수 있는 스피킹(speaking) 능력과 문서 작성 능력을 중시해야 한다. 기업 또한 중국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학습형 조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이제 학습하지 않는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박승찬 교수는
중국 칭화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으로 일 했다. KOTRA 수출전문위원과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 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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