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일본방문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7일부터 3박4일간의 일본방문길에서 줄곧 제기할 화두 (話頭) 는 '21세기 한.일 동반자 관계' 의 설정.

21세기의 문턱에 이른 양국이 지난 세기의 불행한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동반자로 거듭나자는 金대통령의 의지 표명은 방일 (訪日) 현장 곳곳에서 가시화될 전망이다.

특히 金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총리의 8일 정상회담 직후 발표될 '21세기 파트너십 공동선언' 과 구체적인 '행동계획' 은 향후 양국 협력관계의 장전 (章典) 으로 자리매김될 듯하다.

이는 우리 외교사상 외국과의 포괄적 협력원칙을 최초로 문서화하는 사례. 일본은 공동선언 전문에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반성' 과 '사죄' (일본측은 '오와비' 로 표기) 의 뜻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외교문서에 특정국가를 지칭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측도 일본의 '과거사 인식' 과 전후 (戰後) 일본의 평화헌법, 비핵3원칙, 개발도상국 경제원조 등을 높이 평가하는 관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갈등과 협력이 무질서하게 섞여있던 한.일관계를 새로운 우호.협력관계로 탈바꿈시키는 시금석이 되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金대통령이 추진할 구체적 협력은 일반인에서부터 정치인.각료에 이르기까지 일본과의 '전방위 (全方位) 교류' 를 추진한다는 게 핵심. 양국은 이제 '일일 (一日) 생활권' 이라는 판단때문이다.

우리 고졸 청소년의 일본공과대 유학으로 '친구관계' 를 형성, 자연스레 '기술이전' 을 촉진한다는 것도 발상전환의 대표적 사례다.

청소년취업사증제도 (워킹홀리데이비자) 도입, 중.고교생 10만명 교류 추진과 일본 대중문화 단계적 개방원칙 천명도 이런 시각의 작업들이다.

지난 90년 이후 흐지부지됐던 한.일 각료간담회도 부활한다.

외교통상.재경.산업자원장관이 참석하는 각료간담회가 11월초께 도공 (陶工) 심수관 기념행사가 벌어지는 일본 가고시마 (鹿兒島) 현에서 개최될 예정.

방일기간중 金대통령이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NHK방송 좌담회를 갖는 대목도 눈여겨볼 부분. 일본 국민들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마음에 와닿는 '새 협력관계' 를 직접 호소하겠다는 얘기다.

金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정치.경제에 집중됐던 교류분야도 안보.문화.청소년.스포츠.환경보전 등의 범세계적 이슈로 확대된다.

북한 핵개발 억지, 군축.비확산을 위한 협력은 물론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예술가.문화재 교류사업, 학술포럼 개최 등을 대폭 늘려나가게 된다.

새 한.일관계의 큰틀 마련이 양국관계를 멀리 내다본 과제라면 우리 경제난 극복을 위한 일본의 지원은 당장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金대통령 방일때 30억달러의 금융지원을 약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체결키로 한 이중과세방지협약의 효과도 기대를 갖게 한다.

주식양도차익의 면세범위를 비상장주식까지 확대하고 근로소득세 면세기준을 대폭 올려 '일본자본의 국내진출' 길을 트기 때문이다.

노사문제에 반일 (反日) 감정까지 가세한다는 이유로 한국투자를 꺼려오던 일본 기업의 이해를 돕기위해 노.사.정 대표의 교류도 추진할 예정이다.

한.일 양측은 향후 21세기 파트너십의 이행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보완하는 '점검절차' 도 제도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적 상흔 (傷痕) 만큼 양국의 미래동반자 관계 정착에도 시간은 걸리게 마련. 金대통령의 방일에서 양국국민의 '마음의 문' 을 활짝 열게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기대되는 성과라는 지적이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