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정치] 거물 정치인들 아프면 왜 신촌 세브란스로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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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DJ)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이들은 모두 신촌 세브란스 병원과 인연이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이곳에 입원했습니다. 폐렴과 폐색전증으로 요즘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입니다. 병문안을 온 이들은 VIP병동에서 이희호 여사를 만나 쾌유를 빌고 있습니다.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도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5월 전립선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30일부터 당분간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도 이 병원에 머무르게 됐습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복역하다 심혈관 질환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2006년 박근혜 전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테러를 당해 오른쪽 턱 주위에 큰 자상(刺傷)을 입었을 때 실려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왜 이 병원에 몰렸을까요. 지리적 이점이 큽니다. 전직 대통령들이 사는 동교동(DJ)·연희동(전두환)과 가깝습니다. 정치인이 많은 여의도와도 멀지 않습니다.

최근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단식 후 진단을 받으러 이곳에 올 뻔했다는군요.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의식해 한양대 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고령의 정치인에게 문제가 생기기 쉬운 심장혈관 분야가 강한 것도 요인입니다.

반면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지난해 서울대 병원에서 늑막 내부에 혈액이 고인 혈흉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김종필(JP) 전 총리는 지난해 뇌졸중 증세로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의 이름인 ‘순천향’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인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병원들의 특징은 철통 보안입니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특별 보안팀이 의료진과 함께 상시 근무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VIP병동의 132㎡(40평)짜리 병실은 하룻밤에 200만원, 82㎡(25평)는 99만원에 이릅니다. 전직 대통령의 의료비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가 부담합니다. 서울대병원 같은 국·공립 병원은 무료이고, 민간 의료기관은 국가가 나중에 지급합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하루에 3만원만 내면 되는 일반 중환자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병원 홍보팀장은 “이희호 여사가 머무르는 VIP룸도 25평대”라며 “국민들의 시선 때문에 너무 큰 공간은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병원은 미묘한 정치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거물 정치인의 입원은 정국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가져오고,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던 정치인도 병문안 등을 통해 화해를 꾀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하자 ‘영원한 라이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쾌유를 기원합니다’라는 리본이 달린 동양란을 전달한 것이 화제가 됐었지요. 박근혜 전 대표가 있을 때도 경쟁자였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이틀 연속 병원을 찾았습니다. 정치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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