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미국 통화·금융전문가 앨런 멜처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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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적 공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아도 정작 공황이 닥칠 것으로 단정짓는 학자나 연구기관은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공황 따위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의 저명한 통화.금융 전문가인 앨런 멜처 교수 (카네기 멜론대) 는 세계 공황의 가능성을 단호히 부정하는 학자다.

그렇다고 멜처 교수가 각국이 손을 놓고 있어도 된다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그의 처방은 ▶미국과 유럽은 무역적자가 늘어나도 보호주의로 가면 안되고 ▶일본은 엔화가 더 떨어지더라도 돈을 풀어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아시아 국가들은 고통스럽더라도 금융구조조정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세계 공황을 우려하고 있는데 과연 공황은 닥칠 것인가.

"공황은 없다. 현재의 상황은 '전세계적 불황' 과도 한참 거리가 멀고, 지난 29년 대공황 때와 같은 금본위제나 고정환율제는 지금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

- 대공황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환율제도다. 대공황 때와 달리 지금은 세계의 주요 통화가 모두 변동환율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아시아 경제가 수축해도 미국.유럽 경제는 계속 팽창하지 않는가.

그 중요한 이유가 바로 변동환율제다.

또 29~30년에 세계 각국은 관세를 올려 무역장벽을 쌓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말레이시아를 빼고는 보호주의로 회귀하려는 나라는 없고, 말레이시아의 잘못된 정책선택은 '비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 등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대공황의 경험으로부터 '화폐의 총량을 줄여 디플레이션의 계기를 만들면 안된다' 는 것을 배웠다.

모든 나라 중앙은행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유럽과 미국의 중앙은행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

-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위기는 왜 일어났다고 보는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일본이 저성장 또는 불황에 빠지면서 수입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두번째 원인은 달러강세 (엔약세)가 지속되던 기간에 아시아 각국이 고정환율제나 달러에 연동 (페그) 된 환율제도를 운용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은 달러약세가 지속되는 동안엔 대 (對) 일본 수출을 늘리면서 이득을 보았으나 달러가 강세로 반전되는 중요한 외부 환경 변화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취약한 금융구조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음은 물론이다.

94~95년 중국의 평가절하도 아시아 위기를 가져온 중요한 이유고,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해외자본의 유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지금의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은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나.

"미국과 유럽이 무역적자가 늘어나도 규제나 보호주의로 회귀하지 않고 수입 수요를 계속 유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일본인데, 금융시스템을 고치고 되살리는 것과 함께 통화팽창을 통해 디플레이션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 경우 자산가격이 다시 올라가고 디플레이션이 끝날 때까지는 통화를 풀면서 엔화가치가 더 내려가더라도 그냥 놓아두어야 한다.

중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구조를 고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

- 국제자본의 이동을 어느 정도는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자본의 이동을 규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신뢰를 무너뜨릴 뿐더러 자본이 유입되게끔 규제할수록 자본은 밖으로 빠져나간다. 일반적으로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

-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나.

"회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몇년간 한국은 정치적 개방과 책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제 상황도 이에 따라 바뀔 것이다.

이같은 희망적 변화가 계속된다면 한국은 금융구조를 개혁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경쟁을 위한 시장개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앨런 멜처교수 약력>

▶카네기 멜론 대학 정치경제학.공공정책학 교수 (현)

▶워싱턴 공공정책연구소 (AEI) 객원 연구위원 (현)

▶일본 중앙은행 통화경제연구소 고문 (현)

▶셰도 오픈 마켓 커미티 (정책권고를 위한 금융계.재계.학계 경제학자들의 모임) 창립자 겸 현 회장

▶레이건 행정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 (88~89년)

▶미 의회.재무부.연방준비제도이사회.세계은행 자문역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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