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 '우울한 추석'…차례상 커녕 끼니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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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여름 기습폭우로 집이나 공장.농지 등을 흔적도 없이 잃어버린 경기북부.충남당진 등의 수재민들은 추석명절이 우울하기만 하다.

무허가주택이어서 보상을 못 받거나 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해 상당수의 수재민들이 아직도 비닐하우스인 수재민보호소 등에서 생활하며 떠내려간 집이나 공장 등을 새로 지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 고양.의정부 = 29일 오후 7시 경기도고양시덕양구벽제동 수재민 제1보호소. 19가구 40명의 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5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임시대피소에서는 10여명의 주민들이 둘러앉아 김치국을 끓여 허기를 채우고 있다.

한쪽 구석에서는 여고 3년생인 박소정 (朴召廷.18) 양이 희미한 백열전등 불빛 아래 수능시험공부에 열중해 있다.

朴양의 아버지 박봉구 (朴鳳求.51) 씨는 "공부방을 잃어버린 채 춥고 시끄러운 비닐하우스에서 공부해야 하는 딸아이가 안쓰럽다" 며 눈물지었다.

어엿한 중소기업체 사장이던 朴씨는 50평짜리 공장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 4억원의 재산피해를 봤다.

보증금 5백만원에 세들어 살던 33평짜리 집과 세간살이도 모두 잃어버려 빈털터리 신세가 돼버렸다.

그러나 朴씨는 공장과 주택이 모두 무허가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대피소에 함께 있는 19가구의 주민 대부분도 같은 처지라 이주지원비 3백만원은 '그림의 떡' 이다.

수재민 김태연 (金泰延.34) 씨는 "하루 1천9백99원씩 지급되는 장기구호생계비만 받고 있는데, 시에서 임시대피소를 떠날 것을 재촉해 암담한 심정" 이라며 "무허가주택 소유자와 세입자에 대해서는 보상규정이 없는 것은 불공평한 조치" 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벽제동에서 1백평짜리 무허가주택과 창고를 지어 잡화도매상을 운영하던 한시연 (韓始年.46) 씨는 "시에서 영세민생활안정자금 5백만원을 융자지원키로 해 한숨을 돌리기는 했지만 이 돈은 집을 다시 짓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며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의정부시가능3동 시민회관내 임시대피소에 남아 있는 3가구의 수재민 12명도 시측에서 당초 지난 25일까지 시민회관을 떠날 것을 요구했지만 전셋집조차 마련할 형편이 못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안골마을을 비롯한 의정부시가능3동 지역에서는 지난번에 51가구가 전파 및 유실됐다.

세입자까지 포함하면 수재민은 1백3가구에 이른다.

하지만 수해 2개월이 지난 현재 주택신축에 나선 곳은 51가구중 13가구에 불과하며 나머지 38가구는 집터에 천막을 치거나 셋집 생활을 하며 쓸쓸한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 충남당진 = 수해로 집이 완파된 충남당진군당진읍도산리 이장의 (李章儀.60) 씨는 군에서 2천만원의 보상비가 나온 지난 9월부터 집을 새로 짓기 시작했지만 총공사비 5천만원중 나머지 3천만원을 못 구해 10여일전에 공사를 중단했다.

李씨는 요즘 집근처 비닐하우스에서 부인과 두 아들 등 네 식구가 바닥에 나무판자를 깔고 간이수도 하나를 설치한 채 생활하고 있다.

이곳 주민 15가구 40명은 수해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마을회관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양.당진 = 전익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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