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뉴스] “20억 사기골프” 고소했다가 “2년 동안 상습도박” 벌금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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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건설업자 A씨(57·여)는 2003년 8월 백화점 골프용품 매장에서 B씨(60)를 알게 됐다. B씨는 A씨에게 “식품회사 사장인데, 골프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골프장을 함께 다니며 가까운 관계로 발전했다.

A씨의 골프 실력이 어느 정도 오른 이듬해 봄, B씨는 A씨에게 C씨(64)를 소개해 주면서 “내기 골프를 해 보라”고 권했다. A씨가 망설이자 B씨는 “돈을 잃을 경우 내가 C씨와 내기를 해 다시 따오면 된다”고 설득했다. 내기는 A씨가 53타, C씨가 44타를 목표로 정해놓고 9홀을 목표 타수 안에 끝내는 사람이 5000만~1억원을 가져가는 속칭 ‘핸디치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B씨는 타수 계산을 해주는 등 내기 골프를 도왔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A씨는 20~30차례에 걸쳐 모두 20억원을 잃었다.

A씨는 “사기 골프 도박에 당했다”며 두 사람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런데 수사를 한 검찰은 B·C씨는 물론 A씨도 기소했다. A씨에게 상습도박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법원은 A씨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가 “나는 피해자일 뿐”이라며 불복했으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는 그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게임 규칙상 상대방의 실력과 관계없이 A씨도 내기에서 이기거나 비길 수 있었던 점과 도박이 2년 동안 여러 차례 계속된 점 등을 고려하면 B·C씨가 사기도박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A씨 같은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 정신적·신체적 상태에 따라 경기 결과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 우연성이 있다”며 “우연성에 의해 승패 결과가 영향을 받게 될 때 도박죄가 성립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B씨와 C씨는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 징역 1년6월을 선고 받았다. B씨의 경우 “자금을 대주면 잃은 돈을 따오겠다”며 A씨에게서 10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가 추가됐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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