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산책] 상하이 TV의 북한 다큐 무얼 말하나

중앙일보

입력

'시민의 발' 택시 기사는
곧잘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합니다.
이런 사정은 한국이나 중국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6월 베이징 출장 길에 택시에 탔다가
중국인 택시 기사가 쏟아내는 '북한 성토론'에 놀랐습니다.
과거 중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말을 할 때는
골치아픈 이웃이긴 해도
그래도 안쓰럽다는 한가닥 情과 같은 여운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잇단 핵 실험 이후
일반 중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뀐 듯 합니다.
"북한 인민을 위한 정권이 아니다" "도대체 정권 세습이 말이 되느냐"
대부분 '김정일 정권에 대한 성토'가 주류를 이룹니다.

서울이 아닌 베이징에서
중국인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많이 달라진 중국의 대북한관을 엿보게 합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북한은 정상 국가 간의 관계'라고 강조하는 대목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입니다.

최근 중국에선
상하이 TV의 다큐멘터리 전문 지스(紀實) 채널이 방영한
'현장목격 북한' 프로그램이 화제인 모양입니다.

7월20일부터 하루 한 편씩 5부작으로 방영한
이 프로그램의 놀라운 점은 '북한 비꼬기' 내용입니다.
북한 당국의 협조를 받아 취재를 했지만
이 다큐는 '백내장 치료도 제대로 못하는'
북한의 한심한 현실을 구석구석 찌르고 있기도 하구요.
중국 인터넷엔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댓글이 시청후 소감으로 올라오고 있구요.

상하이 TV의 북한 비꼬기 소식을 접하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는 듯 합니다.
아울러 중국의 대북한 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구요.

개혁개방 30년이 지난 중국에선 이제
어떤 정책을 수행하기에 앞서 민심의 향배를 우선 짚어 봅니다.
공산당 일당독재라고 하지만
민심은 언제든 배(정권)를 띄울 수도 또 엎을 수도 있으니까요.

1980년대 후야오방의 실각 원인 중 하나도
중국 민중의 '반일 정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한 채
친일적인 정책을 취했던 데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구요.

상하이 TV 보도에서 느껴지는 건
조심스러운 전망이긴 해도 혹시나
중국 정부가 대북한 정책에 변화를 주기에 앞서
일반 중국 국민에 대한 '북한 제대로 알기' 교육 차원이 아닐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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