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패트롤]은행 감원 충돌…타협·파국 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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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한 주다.

21일 기아자동차에 대한 2차 입찰서 제출이 있고, 금융노련은 29일 파업을 앞두고 위원장의 단식투쟁 등 대정부 공세의 수위를 높여갈 예정이다.

최근 경제정책의 키워드로 떠오른 경기부양을 둘러싼 논란에 더 분명한 '방향성' 이 주어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99년 정부예산안 발표나 농가부채 경감안도 이번주 중 확정 발표될 공산이 크다.

어느 것 하나 복잡하지 않은 문제가 없고, 또 사안의 비중 또한 만만찮은 것들이다.

1차 입찰에서 정부.채권단의 준비부족과 입찰 참여 회사들의 고의적인 유찰기도로 결국 1개월이 늦춰진 기아차 입찰은 이번엔 결판이 날 분위기다.

포드가 발을 뺐고 현대.대우가 사실상 인수의지도, 여력도 없어 보이는 터에 남은 문제는 삼성의 '결심' 여부다.

삼성은 갈림길에 서 있다.

자칫하면 그룹 전체로 파급될지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고 인수하느냐, 또는 지금까지 자동차에 투자한 3조원을 포기하고 차제에 발을 빼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외 자동차회사와 인수부담을 나누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인수란 점에서 전자와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이 사안이 단지 사업성을 따지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다분히 '정치적 모양새' 를 띠고 있다는 점이고 이것이 '결심' 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7개 조건부 승인은행 및 서울.제일 등 9개 은행의 인원감축과 이에 반발한 파업결의는 향후 금융구조조정의 성사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만한 문제다.

정부로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재정을 쏟아붓는 판에 대량감원은 불가피하며 퇴직위로금은 가당치도 않다고 얘기하는 반면, 노조측에서는 인원감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잣대나 감축비율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정리인원에 대한 상당한 위로금도 원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일단 힘겨루기의 양상을 띠고는 있지만 결국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 (?) 로 끝날 수는 없는 문제다.

실제로 파업이 벌어질 때,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미칠 것이고 정부와 노조 어느쪽이든 비난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열어놓은 '퇴로 (退路)' 를 다소 유연하게 조절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은행노조도 개개인의 처지를 떠나, 현재 그들을 보는 여론이 얼마나 악화돼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경기부양과 관련해선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자세가 여전히 모호하다.

'성장잠재력 견지' 니 '성장활력의 보전' 이니 하는 말장난이라든지, '경기부양' 이란 표현에 대한 알레르기성 반응이라든지 하는 데서 벗어나 다소간의 적극성을 띤 것은 다행이지만 상황인식은 여전히 안이한 느낌이다.

자칫하면 모두가 '기다려 보자 (wait & see)' 는 쪽으로 흐르고 이것이 우리 경제의 모습을 다시 '안으로 감겨드는' 위축국면으로 몰고 가지 않을지 걱정이란 얘기다.

박태욱(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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