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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산 방폐장 실패 따라 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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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카산이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선정된 것은 2002년 조지 W 부시 정부 때다. 1982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정 이후 20년 만의 역사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올해 사실상 중단됐다. 백악관의 새 주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지하수 오염과 화산 분출 가능성 논란이 일었고,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주민들의 반발도 거셌다(앨리슨 맥파레인 편집,『유카산 프로젝트의 이해』). 이런 부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유카산 처리장을 반대했다.

유카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고준위 폐기물 처리를 놓고 큰 진통이 예상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썼던 장갑이나 작업복 같은 저준위 폐기물의 처리장 건립을 놓고도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걸 기억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험해도 꼭 가야 할 길이다. 첫걸음은 29일 내딛는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를 논의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이날 발족한다. 한국은 현재 원전 20기를 보유한 세계 5위의 원전 강국이다. 2016년까지 8기를, 2030년까지 10기를 추가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36%에서 59%로 확대할 계획이다. 문제는 원전을 돌릴수록 방사성 폐기물이 쌓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현재 4개의 원전에 임시 저장된 고준위 폐기물은 1만83t에 달한다. 이 추세면 2016년부터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어진다.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처리장 건립은 결국 향후 에너지 공급이 제대로 될 것이냐가 걸린 생존의 문제인 셈이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워낙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도 남의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적어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론화위원회와 공감대를 느껴야 한다고 본다. 한 가지 또 중요한 게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존 계획을 뒤집는 일을 예방할 장치를 만들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부시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대체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떤 기술을, 어떻게 할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갈등의 불씨를 덮기 위해 가야 할 길을 피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나라의 백년대계는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추진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국민은 희망을 가진다. 차기 대통령선거를 할 2012년 말은 고준위 폐기물이 턱밑까지 찰 때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