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경제의 체력 따지는 종합 성적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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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26면

올 초 금융 당국은 한 영국계 민간 회사와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피치다.

돈이 보이는 경제 지표 - 국가신용등급

피치가 ‘한국 시중 은행들이 부실 대출과 투자 손실이 크게 불어나 내년에 40조원이 넘는 신규 손실을 떠안아야 할 것’이란 요지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내놓은 게 발단이 됐다. 반박과 해명에 나섰던 금융 당국은 피치의 위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생겨난 ‘국가신용등급 콤플렉스’ 탓이다.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놓고 요즘 말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 회사가 내놓는 국가신용등급 지표의 영향력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도 몇몇 동유럽 국가들이 신용등급이 깎이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 예외 없이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통화가치가 하락했다. 유럽의 금융 메카인 영국마저 신용등급 강등 위협에 처해 있다.

국가신용등급 지표는 외국인 투자의 신호등 역할을 한다. 민간 기업의 해외 차입,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한 국가의 생사를 쥐락펴락하기도 하는 국가신용등급 지표는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신용평가회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생겨난 부산물이다. 원래 신용평가회사의 주된 업무는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 평가였지만 점차 그 영역을 지방자치단체·정부 발행 채권 부문으로까지 넓혔다. 이게 사실상 한 나라의 실력과 체력을 따지는 종합 성적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국가신용 평가는 여느 채권 평가보다 훨씬 포괄적인 점검이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은 외환보유액과 외채구조 등 대외 건전성이다. 여기에 거시경제 지표와 재정 건전성, 금융 및 기업 부문 경쟁력, 노동시장 유연성, 정치 상황, 국가 안보까지 체크한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투자 적격(무디스:A2, S&P:A, 피치:A+)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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