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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점프, 미꾸라지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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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정치가 수준이 낮다고들 하지만 일본 또한 정치 행태의 후진성으로 보면 만만치 않았다. 1993년의 10개월을 제외하곤 55년 동안 자민당이 집권당 자리를 내놓지 않았으니 말이다. 온갖 비리와 스캔들이 터져도 일본 유권자는 우직하리만큼 자민당 외길을 택해 왔다. 일본인들에게 지지 정당을 야당으로 바꾸게 하는 건 미꾸라지 열 마리를 나란히 일렬로 세우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했다.

그러나 지금 ‘자민당 타이타닉호’는 절반 이상 물에 잠겼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달 30일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참패가 확실시된다.

이를 반영한 듯 최근 한 달 사이에만 재무성·총무성 등 전체 부처의 절반이 넘는 7곳의 사무차관이 소리 소문 없이 그만뒀다. 일종의 엑소더스다. 또 한편으론 민주당 의원들에 줄을 대기 위해 난리다. 수년 전 시찰 때 찍은 기념사진에 같이 나온 사진을 들고 와 “당시 동행했던 XX입니다”라고 구애하는가 하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자들이 어떤 게 있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며 의원들 취향과 사상을 훑는다고 한다.

무엇이 ‘미꾸라지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끊임없는 학습 및 탐구, 그리고 문제의식의 축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은 거의 매일 밤 의원회관에 도시락 하나 들고 들어가 끼니를 때우고 늦은 시간까지 정책 공부에 여념이 없다. 관료에 모든 걸 떠맡기는 자민당식 정치문화와는 철저히 담을 쌓았다. 정책 수립에 필요하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직접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보니 요즘 여당의 간사장과 정책토론을 하는 걸 보면 거의 백전백승이다. 6선의 간사장이 그러니 젊은 의원들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다.

2007년부터 연금 정책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캐 온 나가쓰마 아키라 의원. 3선인 그는 수년에 걸쳐 방대한 연금자료를 수집해 분석,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연금납부기록이 5000만 건이나 누락돼 있음을 밝혀냈다.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연금 문제에 관해선 여당이건 관료건 그에게 당할 자가 없음을 유권자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켰다. 그는 ‘미스터 연금’이란 칭호까지 얻으며 민주당 정권의 연금개혁 담당 장관으로 내정됐다. 이 같은 정책 능력의 향상은 ‘민주당에 맡겨도 되겠다’는 유권자의 신뢰로 이어졌다.

한국의 국회의원 여러분. 일본마저 바뀌고 있습니다. 연어마냥 점프하고, 이를 밀쳐내고 할 에너지가 있다면 좀 더 공부합시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